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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오늘의젊은작가' 시리즈에 포함된 작품이라 젊은 소설가일꺼라 생각했다. 받아본 책 앞에 명기된 작가의 약력은 그렇지 않았다. 몇장 읽지 않았는데 포스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너무 늦게 장인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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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차안이다. 3명의 인물이 타고 있다. 이들은 대학때 영화동아리를 같이 하던 한 친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으로 문상을 떠나는 길이다. 영화제목들(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무방비 도시/시계태엽 오렌지/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등)로 만들어진 소단락에서 이 3명은 교체되며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 과정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기도 한다. 심지어 끔직한 사고도 일어나 이들의 여행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들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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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플롯이다. 구성이나 각 인물의 성격묘사부터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서사의 얽힘이 너무 세련되었다. 변경되는 화자를 통해 보여지는 현실은 미묘하게 어긋하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극적 효과가 더해지는 것은 소단락제목의 영화들이 소설안에 녹아나면서 발휘되는 기시감과 위화감의 조화다. 영화의 분위기가 스민 환경에서, 등장인물들은 주체인 자신과 관계되는 타자에 대한 의심과 혼돈의 서사 위를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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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후반부 마무리 부분이 초중반부에 비해 결이 다르다. 매끈한 문체로 이어지고 파격적인 사건들로 소설을 쌓아올려가다가 갑자기 줌 아웃해버린 느낌이다. 의도는 읽힌다. 나쁘진 않았으나 좀 더 다른 엔딩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도 전반적인 작품의 퀄리티는 만족스러웠다. 독특한 독서 경험이었다. 책장을 덮고 바로 작가의 다음 장편을 주문했다.
덧,
가장 좋아하는 인디영화 한편을 뽑으라면 #짐자무쉬 의 '천국보다 낯선'이었다. 어린시절 우연히 보게된 이 흑백영화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공허하고 황량한 분위기에 카메라워크 안에서 의미없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들이 가슴이 많이 와 닿았던 것 같다. 잘 짜여진 플롯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소설 제목이다.
p9"머릿속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든다. 그 방에 불안이나 외로움 또는 우울 같은 감정들을 넣는다. 외출할 때는 그 방의 문을 단단히 잠근다. 외출이니까. 외출에는 적당한 햇빛과 소음, 목적지 같은 것만 있으면 되니까."
p17"나는 내 삶이 어떤 낙관적인 기분 속에서 흘러가기를 희망한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가 뾰족한 공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평행 우주의 다른 세계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런 우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것 이라는 비관 때문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p53"누구였던가? 애도란 산 자들의 것이라고 말한 이가. 죽음이 뚫어놓은 구멍을 메우기 위한 산 자들의 의식이라고 말한 이가. 그렇다. 그것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수행하는 인간의 제도에 불과하다. 나는 애도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구멍 속으로 나 자신을 들이밀고 싶은 인간이다."
p115"세계는 명료하다. 세계에는 모호함 따위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모호하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명료함이 부족하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비밀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명료한 세계와 모호한 인간 사이에 중간 지대 같은 것은 없다. 명료한 세계 속에서 모호한 인간들의 권력투쟁이 끝나지 않을 뿐이다. 모호한 의미를 규정하고 장악하려는 인간들 간의 싸움이다. 인간이 명료함의 일부가 되는 것은, 죽음의 순간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의 모호함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다. 모호함이 제로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 순간이다. 인간이 세계 자체가 되었으니까. 나는 가끔 내가 그런 세계를 꿈꾸고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명료한 유토피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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