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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작가의 작품은  한편을 읽었다. 첫책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고, 얼마전에 ‘산책’을 소재로 한 수필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했다. 얇은 책이라 쉽게 즐기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예상을 벗어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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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들어가며’에 써놓은 한 문장이 인상깊다. ‘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잘 읽어야한다. 뜻이있는곳에 길이있는것이 아니다) 길을 놓고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놓겠다는 뜻이다. 힘빼며 글을 쓰는 듯 하면서 복선들은 미리미리 챙긴다. 이어서 22편의 비슷한 색깔의 다른 ‘산책’이야기가 펼쳐진다. 홍보문구에도 나오듯이 서울에서, 파리에서 길과 산책을 놓고 벌이는 ‘수다’이자 '예술론'이자 자신의 '세상인식'의 방식에 대한 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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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페이지 밖에 되지않은 작은 예쁜 수필집(아. 이 책 역시 이쁘게 잘 만들었다. ^^)에 들어간 에너지가 다른 책의 몇배는 되는 것 같다. 잘 하지 않던 짓, 책에 등장하는 작가와 등장하는 그의 지인들 금정연, 오한기, 이상우 등을 구글링했다. 인터뷰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책이 가지는 최고의 장점, 재미를 그들과 작가의 캐미가 담당한다. 찾아보니 이들 모두는 살짝 화제가 되었던 ‘후장(Anal)사실주의’라는 그룹의 맴버들이다. 기존 문단의 정체성에 반대하며 ‘문학은 인용’이라는 주장을 하던 젊은 문인모임. 영화와 문학과 평론 사이 어딘가에 서서 조금은 삐딱한 자세와 시선으로 세상에 시비걸던 지식인 룸펜그룹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은 그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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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오래했다. 유머센스가 좋은 읽을거리다 라고 정의하기엔 아쉽니다. 좀더 생각해 봤다. 이책을 내스타일대로 정의하면 이렇다. 이 책은 그들의 후일담이자, 추억이자, 지식의 자랑이다. 30대 가난했지만 패기넘치던 젊은 예술가가 세월이 지나 40대에 들어서 척박한 풍파에 잔기스를 온몸에 새겨가며 늙어가는 과정에서의 우러나오는 ‘오기’다. 아마 ‘현학’과는 다른 줄기의 ‘지식수다’로 읽힌다. 물론 그것들로 책을 가득 채우고 싶었겠으나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한 ‘노숙한 작가’는 센스있는 위트로 책을 잘 포장해 내고 있다. 책장을 덮고 제목을 바라보면서 느낌이 왔다. 이 책의 제목은 정직하다. 짧게 축약된 각종 인문학/철학/영화학의 엑기스들을 '랩'하듯 쏟아낸다. 맞다. 랩이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어라. 지적수준이 되는 사람들에겐 알아서 이해할만한 고급 컨텐츠로 제공할 것이다. 잘 이해을 못하는 '일반인'들께서는 '패션','분위기'으로 소비하시라는 조금은 건방진 제목인 것이다. 나의 지적 수준은 낮은 편이어서 소화할 만한 컨텐츠의 양은 적었고 즐길만한 유머는 많았다. 재미있었다와 지루했다의 중간정도 만족도였으나 소화못한 컨텐츠들이 아직 책안에 많이 남아있으니 책값이상의 독서였다는 결론을 냈다. 😊
덧,
여기까지 쓰고나서 다른 서평들을 보는데, 글솜씨와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 🤔 글솜씨는 센스넘치는 티키타카 등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나, 인문학적 지식이라. 우리나라 독자의 수준이 이렇게 높았구나 하는 생각과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다. 😭
p42”작가가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착각이다….. 내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라는 착각이다….자기 확신은 완벽한 픽션인데, 사실 인간은 픽션적 존재고 세계(역사)는 픽션의 실현과 재현의 교차로 이루어지므로 픽션에 대한 확신이 그것을 실현시켜주는 원동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p78”유명세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시시한 유명세와 심연의 유명세……. 시시한 유명세와 심연의 유명세 사이의 차이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차이가 없거나 차이가 있다 해도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이 군에 속하는 작가들에세게 오는 게 아니라 이 군을 나누는 애호가들에게서 온다.”
p95” (글쓰기와 산책)….그 모든 것을 상실한 어느 지점에서, 주제외 의도, 인과와 의무를 망각한 지점에서만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p141”정연씨와 나는 서른여섯 살 이후로 돈 생각 아닌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최근에야 우리가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이 왜 없지, 라는 생각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p185”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특정 장면과 이미지는 관객의 눈에 의해 외부로 이탈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의미와 욕망으로 재창작될 수 있다.”
p210”장소는 안전을 의미하며 공간은 자유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집은 장소이며 도시는 공간이다. 그러나 도시에는 장소의 아우라가 부여될 수 있다.”
p250”……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뽐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진정성 게임에는 여러 이론과 수사, 실천(증명)이 따르지만 사실상 내용은 없고(자신만 알고 사랑하는) 스스로의 진실함을 보여주는 말의 향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진심이 정말 증명 가능한 것일까. 더 진짜인 작가가, 예술이, 실천이 있을 수 있을까.”
p259”……이원성은 세계의 표면을 형성하며 인식을 위한 기본단위이다. 다만 기저상태에 동일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비이원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연결된다. 다시 말해 기저상태는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기반이며 이러한 상태에서 주객은 철폐될 수 있다. ‘사실상 여러분은 제 안에 있는 제 일부이며, 이것을 공동현존이라고 부릅니다.’ 로이 바스카가 원하는 것은 차이가 아닌 공동현존의 영역을 넗혀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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