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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선릉산책

by 기시군 2022.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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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을 찾았다. 단지 제목에 이끌려 아무 정보 없이 구매한 책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싶다. 책 날개에 작가 얼굴사진도 친근하다. 😊 녹색표지의 정릉을 산책하는 두사람의 그림도 좋다. 사람에 대해 깊게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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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대부분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다양한 형태의 '상실' 전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번째 단편 '두부'는 잃어버린 강아지 '두부'를 놓고 가족간의 상실과 위로를 말한다.  가장 좋았던 '사라지는 것들'에서는 상실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 간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진득하게 깊게 아프게 파고든다. 표제작인 '선릉산책'과 '이코'를 통해 장애인이라는 기능성의 상실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고통을 현실감있게 그리고 있으며 그 옆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우리'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나머지 단편들에서도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타인과 행하는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좀더 다른 형태의 소설적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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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구성, 경지에 오른 묘사력,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의식, 어느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마음울림과 읽은재미를 같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스타일의 소설이라 할 수도 있지않나 싶다. 묵직한 주제를 한땀한땀 꾸준히 쌓아올려 '소설'을 만든다.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할말 해야할 행동은 꼬박꼬박 다 하고야 마는 단단한 사람이란 인상이다. 다른 작품도 찾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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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중 '두번째 삶'의 경우는 다른 작품들과 약간 결이 다르긴 했다. 물론 이 작품도 일종의 '시간의 상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로 풀 수 있다. 그런데 신선했던 것은 중반 쯤 읽었을 때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순수문학 영역의 표준에 있는 작가는 나중에 본격 스릴러나 하이브리드 형태의 다양한 소설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좋은 작가를 찾아 기분이 좋다. 😁

덧,
'미스터 심플'이라는 작품에서 당근마켓 닉네임이 '미스트 심플'인 중년아저씨가 나온다. 예전 이름은 '미스터 슬픔'이었는데 거래가 심플하다고 '미스터 심플'이라 바꿨다고 한다. 인상적이었다. 읽으면서 내 닉네임은 뭐가 좋을까 생각해 봤는데 떠오르는게 없었다. 일단 난 당근마켓을 할 생각도 없으니 …☺️

p59" 하지만 문제는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였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길래 언젠가 그것이 찾아오리란 생각에서 이토록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일단 애썼다. 방어적으로 살았다. 사건 하나, 갈등 하나가 뭔가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걱정하고 대비하며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어떤 일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일이 일어나지 않게 버티는 힘으로 무너지는 거였다. 안에서 밖으로 점점 갈라지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초라한 집 한 채. 그래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어리석은 삶."

p199"세탁과 건조에 각각 삼십 분. 짧지만 순도 높은 시간이다. 잘 읽히고 잘 써진다. 활자가 눈을 통해 뇌로 바로 인쇄되는 것 같다. 생각과 이미지는 막힘없이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상하지. 여기에 오면 좋을 걸 알면서, 이렇게 써지고 읽게 될 것을 알면서, 안 오게 된다. 아니, 그래서 안 오는 것일지도. 좋아지는 것을 원하면서, 좋아지는 나 자신은 원하지 않는 마음. 지친다. 지겹고."

p217"나는 내 삶에서 뭘 배웠나. 무엇을 알고 있나. 그래서 얼마나, 얼마큼, 표현할 수 있나. 솔직하게? 순간 마음을 뚫고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국수를 먹으려다 젓가락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관절 마디가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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