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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유령의 마음으로

by 기시군 2022.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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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라는 단어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반짝거리는 윤슬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잔잔해 진다. 고통은 접히고 고민은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서 내 그림자 뒤로 숨는것 같다. 농담이라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외롭지 않은 순간이 윤슬과 마주할 때가 아닌가 한다. 소설집 해설에서 이 단어를 접하고, 공감했다. 임선우라는 이 젊은작가(95년생이다)는 윤슬을 바라볼 때를 생각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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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작품이 실려있고, 거의 대부분 좋다. 평이한 작품이 없어 더 좋다. 몇편의 개요를 보자

#유령의마음으로 : 편의점 알바를 하는 내 앞에 나와 똑같이 생긴사람이 나타났다. 누구냐 했더니 너의 유령이란다. 앞으로 붙어다닐꺼란다. 힘들어 죽겠는데 객식구가 생겼다.

#빛이나지않아요 : 괴상한 해파리떼가 출현했다. 이 해파리에 피부가 닿으면 사람이 해파리로 변한다. 바닷가에서만 조심하면 되니 사회에 큰 충격을 주진 않았다. 대신 자발적으로 해파리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

#여름은물빛처럼 : 내가 사는 셋방의 전 주인 여자를 찾으러온 남자가 내방에서 나무가 되어 버렸다. 난감하다. 일단 물은 준다

#동면하는남자 : 역할대행 알바를 하는 나에게 어떤 남자가 천만원을 주며, 자신의 동면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깊은 산속으로 가서 구덩이에 자신을 묻고 경칩에 와서 깨워달라는 것이다.

#커튼콜연장전라스트팡 : 길을 걷다 위에서 떨어진 간판에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나타난 저승사자는 이렇게 갑자기 죽은 사람들에게 생에 대한 아쉬움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100시간의 유예시간을 준단다. 유령상태로 하고 싶은것 다 해 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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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젊은 SF작가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결이 다르다. 엉뚱한 상황들이 무작위적으로 벌어지지만 환상과 SF는 그저 장르적 요소의 활용을 위해서만 쓰여진다.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소통'의 이야기들이다. 기특하게(죄송합니다😅)도 젊은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에서 잘 벗어나며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너무 깊은 자기연민도 없으며, 상황과 트릭만으로 재미를 찾지도 않는다. 자신의 진지함에 파묻혀 작품속을 헤엄치는 작가도 있으나, 그녀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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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진지한 삶의 이야기를 가볍게, 잔잔하게 할 수 있는 글솜씨가 돋보인다. 청춘의 고단함은 찰랑거리는 서사들로 보기좋은 결로 작품집 전체를 가로지른다. 앞에서 언급한 '윤슬'처럼 잔잔하지만 평온하지 않고 다양한 물결의 높낮이를 보여 눈과 그걸 쳐다보는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젊은작가에서 기분좋은 잔소리를 들었다. " 왜 사람들은 슬픔을 자처하는 걸까. 자처하지 않아도 세상에 슬픔은 넘쳐 나는데.(p217) " 란다. 문장을 만나고 생각했다. 정말 별것 아닌것 가지고 우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직설같았다. 반성하자. 😳 좋은 소설을 읽었다. ☺️

덧,
사랑스러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단편을 그냥 넘어갈 뻔했다. #알래스카는아니지만 . 주인공은 전직 경리직 회사원, 현직 킬러다. 뭐 사람을 죽이겠다는 건 아니고 자가기 이뻐하던 고양이 2마리를 물어죽인 들개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킬러 훈련을 받는다. 체력을 키우고 마취총도 구입한다. 성격도 대범하다 밑에 층 이상한 여자가 방바닥에 구멍을 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친구가 되어 그녀의 고민도 함께한다. 멋진 주인공. 응원하며 읽는 즐거움 😁👏

p89 여름은 물빛처럼 " 마음속에서 자꾸만 펄펄 눈이 내렸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덮일 때까지 계속해서. 어떤 기후는 그치기까지 몇 개의 계절이 걸리기도 한다. "

p138 낯선밤에 우리는 " 우리는 자주 쉬어 갔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얘기가 끝날 때가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며, 온문으로 자신이 얘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함계 무언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

p199 동면하는 남자 " 어렸을 때도 어른이 되면 방학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늘 무서웠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방학을 주기로 했다."

p243 커튼콜 " 안정된 주거가 사라졌고 균형 잡힌 식단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조차도 갈수록 보잘것없어져서 나중에는 머리숱과 규칙적인 생리 주기, 주말 아침마다 보던 영화와 응원하던 야구팀이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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