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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하얼빈

by 기시군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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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을 걸으면 차가운 한기가, 서러운 입김이 공기 중 흩어지는 느낌이다. 노작가의 특기인 칼날같이 날카로운 문장들은 청년 '안중근'의 결심과 그와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차분하지만 깊숙히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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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가가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이제 겨우 회복했으나 살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젊은시절부터 꼭 그려내고자 했던 '안중근'을 쓰기로 했고,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책을 내었다. 안중근의 고뇌 따위를 담을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라는 위태로운 줄 위에 '우리 민족'의 모습과 결심을 행하는 자의 위엄만을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은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쏘는 전후 일주일을 담는다. 또한 길게 관련인물들의 후일담도 담고 있다. 우리의 역사다. '이토'가 가지고 있는 약육강식과 문명개조론도 살핀다. 그들의 명분이 이 땅의 민초들의 희생을 정당화 시켜주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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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토호의 큰아들로 어린시절 동학군과 싸웠던 인물, 천주교도 이면서 민족을 위해선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 남겨진 아내와 세 아이는 자신이 행하는 결단에 영향을 주지 못했던 인물. 쉽게 해석되지 않은 이  영웅적 인물은 그의 남겨진 말들과 주변의 행적들로만 해석될 수 있다. 노작가는 오랜 준비 끝에 나름 멋진 결과물을 독자들에게 보낸다. 민족과 사람과 개인의 관계를 이 문제적 인물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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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 신문기자였던 작가는 전두환정권에 부역을 한 적이 있다. 아직도 그에 대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이력이다. 신문사에 군인이 상주하며 검열의 폭력을 휘두르던 때였다. 30대 젊은 기자였던 그는 넉넉하지못한 집안의 가장이였고, 당시 신문사의 선임기자로 위에서 내려오는 전두완 찬양기사를 반항하지 못하고 다 써야했다. 그가 느꼈을 고통이 전해져 온다. 그가 '밥벌이'을 위해,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들끓은 노기를 내려 놓을때 30대의 안중근은 자신의 모두를 걸고 고뇌없이 '전쟁'을, '혁명'을 수행한다. 자신이 가지 못한 길에 간 이에 대한 '추앙'이 책에서 온전히 느껴진다.

여전히 '부사'없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빠르게 읽히고 쉽게 전달된다. 집요한 고증 덕분에 당시 왕과 부역자들의 비린모습과 짓밟히는 민중들의 희생과 분투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뻔한 이야기라 치부하지 않고 일독하길 권한다.

p33 " 안중근은 동학군과 싸웠지만, 세상을 못 견뎌하는 성정은 그가 싸웠던 동학군과 별 차이 없을 것이었다."

p59 " 사내들의 말은 가깝고 다급했지만, 말 끝난 자리의 허허로움을 다들 알고 있었다. 안중근은 몸속에서 들끓는 말은 취기와 뒤섞여 아우성쳤다. 안중근은 말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

p159"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힘,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

p170 " 조선 팔도는 고요했다. 순종은 그 고요의 바닥이 두려웠는데,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순종은 살길을 생각했다. 조선의 살길과 황실의 살길과 백성의 살길은 겹치고 또 부딪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

p236 "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토,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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