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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추천이 아니였으면 고르지 않았을 책이다. 소재와 제목이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AI가 자동차를 모는 시대에 아버지가 빨치산이라니, 너무 비유가 과한게 아닌가 하면서 책을 펼쳤다. 눅진한 첫 문장부터 소설에 빠져들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빨치산 이야기는 책에만 나오는 기록이 아니라 아직도 생생한 우리 이웃, 우리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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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이였던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 돌아가셨다. 식구라곤 같이 빨치산 활동을 하셨던 엄마와 대학교 강사인 외동딸 여주인공 밖에 없다. 실제 아버지, 어머니가 빨치산 활동을 했던 고향 구레에서 장례식을 치루어야 한다. 고향엔 빨갱이 아버지 덕분에 연좌제로 삶이 고단했던 친척들이 있다. 또 아버지의 '민중에 대한 애정'이라는 오지랖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모여 모여 장례에 참여한다. 책은 며칠간의 장례식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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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가 아니었다. 작가는 자신의 쌉싸름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빨치산을 하다가 위장자수를 해서 남한 공작활동을 하다가 다시 감방을 다녀온 오리지널 빨갱이였다. 국졸학력에서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 3일간의 장례식 풍경을 두고 아버지의 평생과 해방 후 대한민국의 질곡, 그 사이에 휩쌓였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멋드러지게 펼쳐진다. 심지어 무거우려면 한없이 무거워질 이야기를 킬킬거리며 웃으면 읽게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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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빨갱이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p68)' 참지못했던 사람들이 만들어간 것이 역사일 것이다. 질것을 알면서도 싸웠던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인간'을 신뢰했다. 짧게는 간사스러운 '인간'의 욕심에 몸서리칠수는 있어도 긴 호흡으로 '인간들'이 이어가는 역사에 대해선 믿음과 신뢰를 보내지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그 현장의 모습들을 가까이 살펴볼 수 있었다. 좋은 책이다.
덧,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이책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남도의 질퍽한 사투리들에서 넘쳐나오는 생활의 활력도 보기좋았고 3일간의 장례이야기를 이렇게 다이나믹하면서 흥미롭게 꾸려내다니, 작가의 서사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단 생각을 계속했다. 유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오쿠다히데오 의 #남쪽으로튀어도 떠오른다. 물론 이책이 난 더 좋았다. ☺️
p21 "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 그저 지나간 첫 남자가, 지나갔음으로 가장 그리운, 뭐 그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p44 "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98 " 먼지에세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
p191 " 어쩐지 마음이 언니가 뽀땃하게 끓여 온 전복죽처럼 뽀땃해지는 느낌이었다. "
p197 "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은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243" 넘의 딸이 담배 피우먼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먼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이네! 소시민성 한나 극복 못헌 사램이 무신 헥명을 하겄다는 것이여! "
p248 " 자기가 생각해도 우스운지 어머니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식 웃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긍게이. 이상허지야. 여개 앉아 있응게 자꼬 그날 생각이 나야. 쫌 대줄 것을... 나 아픈 중 빤히 아는 사램이 자개도 오죽허먼 그랬을랑가 싶고야....'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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