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구관조 씻기기

by 기시군 2022. 9. 29.

✔️
📕
안도연 시인의 말에 의하면 '시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에서 나온다고 한다. 시인이 가지는 '보는 눈'에 공감을 하며 반복하여 그 시세계를 즐길 때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된다. 조금은 편파적으로 쇠비린내 풍기는 위악적 시어를 좋아하는 내게, 다른 풍취를 풍기는 시인이 왔다. 그가 소중히 다루는 '시적인 것'들이 흥미로웠다.

📗
가치판단을 하기 싫어도 시인의 순수한 영혼의 흔적들은 시들을 통해 계속 드러난다. 시인이 바라는 세계,  '말린 과일은 뜨거운 물속에서도 말린 과일로 남는다 / 실내에서 향기가 난다(p13)'는 그곳을 시인은 들뜨지 않은 차분한 어투로 열망한다. 젖음으로 표상되는 오염과 고통으로 부터 존귀한 무엇을 지키기 위해 조심스러운 손길과 말의 방향을 잡는다. 그는 지치지 않고 자신의 바깥 쪽에 손을 내민다. 그러다 간혹 내 민 손끝에 걸쳐지는 차가움도 느낀다. 시인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이 젊은 현자는  '마주 잡은 반쪽의 따뜻함(p18)'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일까 어쩌면 용기있게 모든것에 손을 들이민다. 현명해서 일지, 아니면 아이의 마음으로 일지는 모르겠다. 어른들의 사정은 그렇게 그려진다.  

📘
간단한 사랑이야기를 해보자. 흔하게 윤회하는 단계 중에 하나인 이별. 그녀와 그는 이별 앞에서 울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간격이 울 뿐이다. 소리도 없이 서로를 울뿐이다. 나는 그 풍경을 본다. 그러다 시인의 시어에 공감했다. '공간이 울고 있었다(p29)'고 시인은 말한다. 공간은 어두웠을 것이라 생각했고, 어둠은 그와 그녀의 편일 것이다라고 다시 생각했다.

신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시인은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나는 기원을 바라보며 혹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지 물었다.(p34)' 그는 무서워 한다. 그의 믿음은 불안하다. 불안은 비로, 물로, 젖음으로 계속 시인을 괴롭힌다. '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베란다의 바닥이 젖어 있(p38)'는 상황이 아프다. '비참하지 않'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주 물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심정을 차분히 드러낸다. '물속은 조용하구나 그래도 목은 마르다(p52)'는 문장, 어쩌면 그는 그 '물'로 생을 반성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시인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능력을 지녔다. 황인찬 시인에게 관찰되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자신이 삶을 꾸리는 형태는 언제나 중요한 의심의 대상이 된다. 시인을 한줄로 평하자면 다음과 같다. '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p94)' 그사람이 시인이라 생각한다.

그 냄새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서 있는 시인의 코에, 귀에, 눈에 비추어지는 '시적인 것'들이 중요할 따름이다. 아주 매력적인 시들이 넘쳐났다. 자신 내면에 대한 깊은 질문은 진솔했고, 부딛히고 울려나오는 그림자들는 모양마다 각자의 존재감이 가득했다. 너무 착한사람일 것 같다는 아주 못된 주관적 불만꺼리 하나만 빼면  좋은 시집을 만족하며 읽었다. 난 기본적으로 착한시인보다 못된시인을 더 좋아한다. 😅

덧,
알콜과 시는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다. 이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다. 다만 나의 화요의 돗술 낮춰볼까 궁리 중엔 있다. 늙어감에 25도는 약간의 숙취가 생긴다. 갑자기 슬퍼진다. 🥲

p16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 모든 것이 여전했다. "

p44 구획 " 끝없이 늘어선 나무들과 / 끝없이 늘어선 나무들의 그림자가 서로 부딪치는 아침이다 "

p61 번식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그가 물었는데, / 죽은 것이 입에 가득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p87 입장 " 남자애들이 돌아오지 않고, 앙상함이 돌아오지 않고, 보랏빛이 돌아오지 않는 그런 오후의 내가 있었다 "

p92 예언자 " 차를 마시고 싶어서 찻잔을 만지려다 연거푸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알아차린 것이다 찻잔이 죽어 버렸다는 것을 "  

p104 무화과 숲 " 밤에는 눈을 감았다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구관조씻기기 #황인찬 #민음사 #김수영문학상 #민음의시 #시집 #시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독서노트 #글 #책 #글쓰기 #글스타그램 #일상 #문장수집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의 이해  (0) 2022.10.04
공중곡예사  (0) 2022.10.02
아버지의 해방일지  (0) 2022.09.27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0) 2022.09.2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0) 202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