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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기시군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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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시게 되는 비엔나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순간, 그 향과 입안의 감촉이 아주 오래전 그녀와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그때 그 커피숍에서 내가 얼마나 그녀를 열망했는지, 그녀를 수줍고 뜨겁게 바라봤었는지, 하나의 작은 사건은 비의식적 기억의 개방을 통해 당시의 감정을, 욕망을, 희열로 가득했던 감각의 기억을 순식간에 호출 할 수도 있다.  

100년전 프루스트는 어느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시간'이라 포장된 자신의 '감정'의 실타래를 발견한다. 당시 모든 작가들이 인물과 사건에 집중한 소설을 쓰고 있을 때, 프루스트는 내 안에 '기억'이라는 방에 침잠해 있는 감정의 실타래들을 끌고 나와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완성한다. 이 책이 바로 현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라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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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의 대작 중 첫번째 권을 읽었다.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을 1,2편 2권으로 내었으니 1부의 반을 읽은 셈이다. 광대한 내면 여행의 가장 초입니다. 마르셀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고향마을 '콘브레'를 배경으로 가족들, 친척들, 성당의 모습, 꽃, 풍경들,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의 모습과 대화속에서 자신이 느껴가는 감각과 감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한권을 빼곡히 채운다. 19세기 후반, 귀족계급과 부르조아 계급이 공존하던 시대의 풍광안에 부잣집 도련님 마르셀은 하고싶은 것도, 생각도 많은 아이이다. 마르셀에게는 집안의 하녀부터 권위적인 아버지, 굿나잇 키스를 열망하게 만드는 어머니 등 많은 관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이웃에 사는 '스완'아저씨가 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외에 처음으로 욕망을 시작하게된 '스완'의 딸 '질베르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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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읽지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지나간 기억에 대한 소설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의 초입에 서있는 청년들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다이나믹한 삶을 부딪히는 사람들에겐 '기억의 소환'을 통한 과거의 사랑,격정,울렁임 따위는 필요없다. 그들이겐 이미 현실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하루는 무료하다. 감정이 죽어있다. 일상은 살아낸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때에는 나를 '감정'이라는 놈이 흔들고 있을 때이다. 무료한 일상 어느 한순간 강렬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감정의 격랑'에 대해서 일 것이다. 그것은 '그때의 분노'일 수도 있고 '그때 열망에 몸부림쳤던 사랑'일 수도 있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풍경, 사물,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서 발생되는 '상호작용'의 결과물들을 자신의 내면의 거울로 끌고들어와 다양한 형태로 비춰낸다. 즉 그의 '묘사'자체가 예술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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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보단 쉽게 읽었다. 어찌보면 사건의 기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장면의 감정의 기술을 즐기는 독서법으로 책을 대하니 조금 편했을지도 모른다. 알레고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묵직한 상징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인용되는 사건, 풍조 등이 많은데 한국인 독자 입장에서 19세기 말 당시 프랑스의 문화지식에 대한 깊이가 없으니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에 꽤 되긴 한다. 그부분도 역자의 성의 가득한 주석문 덕분에 조금은 수월히 넘긴것 같다.

나머지 10권을 언제읽을지는 아직 생각해 보진 않았다. 아마도 1권과 같은 형식으로 그 거대한 내용을 가득채울 것 같은데, 큰 사건없이 묘사 중심 서술의 책을 연이어 읽는다는 것은 사실 만만하진 않다. 그래도 꽤 시간이 지난뒤엔 다시 찾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매력이 있다. 사실 이 소설 정도의 깊이있게 묘사된 '감각'과 '감정'에 대한 소설이 본적이 있던가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많지는 않으나 꽤 여러번 프루스트의 묘사가 감동 받기도 했다. ☺️ 아무튼 나머지는 다음을 기약해본다.

p43 " '아는 사람을 보러 간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

p87 "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되었다."

p94 " 이 시골 방들은 ... 미덕, 지혜, 습관 같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은밀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넘쳐흐르는, 온갖 삶이 발산하는 무수한 냄새들로 우리를 매혹했다. "

p205 " 오래전부터 내 행동에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정원에서는 땅이 대신 걸어 주었기 때문이다. '습관'이 날 품에 안고는 아기처럼 침대까지 옮겨다 주었다."

p225 " 우리는 우리 감각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고립되고 비일관적인 기억 앞에서 우리는 이 감각들이 혹시 환상의 희생물이 아닌지를 묻게 된다. "

p250 " 이렇게 해서 질베르트의 이름이 내 곁을 지나갔다. 그 이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불확실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것에 사람의 모습을 부여하여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되찾게 해 줄 부적처럼 주어졌다. "

p273 " 내 상상력은 관능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힘을 얻었고, 관능적인 것은 내 상상력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 내 욕망은 이제 끝이 없었다. "

p317 " 사람들은 연인을 믿을 때조차도 연인을 의심하며, 다른 속셈이나 다른 의도 없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어머니의 키스 같은, 그렇게 완전하게 연인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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