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눈감지 마라

by 기시군 2022. 10. 8.

✔️
📕
이기호란 장르를 만들어야 한다. 크레파스로 그리는 수채화 같다할까. 뭉툭한 필치에 어떻게 이렇게 맑고 착한 시선을 그려낼 수 있을까? 더구나 웃으면서 울게 만드는 신묘한 재주는 국내 어떤 작가와 비교가 될지 상상할 수 없다. 이기호작가가 자기스타일로 새책을 냈다. '눈감지' 말라고 한다. 뭘보고 있길래.  

📗
엽편모음은 맞다. 하지만 연작소설이라 장편으로 볼 수 있겠다. 두명의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다. 정원 채우기도 어려운 지방사립대를 졸업하는 두명은 취업에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증금도 없는 허름한 방에서 같이 생활한다. 일단 이 두사람은 부모덕은 1도없는 흙수저로 학자금 대출로만 천만원전후의 빚을 갚아야한다. 그래도 같이 있는것이 의지가 되는 둘은, 편의점, 택배상하차, 출방부페알바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세계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 세계의 이야기를 49편의 짧은 이야기들에 담았다.

📘
다 아는 이야기 하나, 금수저는 성격도 좋다. 미인 중에서 착한사람이 많다. 굴곡이 없으면 친절하기 쉽다. 가난하면 화가 많다. 피곤하니 신경질이 늘고, 배풀여유가 없기에 한푼이라도 지키려 성질을 내게된다. 가난한 자는 가난자들 사이에서 산다. 그들의 화는 그들끼리 나누게 된다. 비극이다. 이 책은 현재 자본주의 대한민국, 지방과 청년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허약한 고리를 매개삼아 인간이 인간사이에서 행하는 다수의 폭력과 아주 작게 이어가는 희망의 흔적을 스케치한다. 한문장 한문장 온힘을 다해 꼭꼭 눌려쓰는 작가의 진심이 보이는 듯 하다.

📙
슬퍼하며 킥킥거리며 읽었다. 코메디같은 아이러니에 웃었다. 주인공은 이 두명만이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판촉을 하려 아파트를 노는 영업사원도, 몇천원이 아까워 계약한 우유를 해지하는 아기엄마도, 붕어빵을 파는 노인부부도, 그 부부를 쫓아내는 파리날리는 치킨집 주인아내도, 카푸어 청년도, 은퇴식에서까지 지루한 강의를 하던 은사도 모두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만 작가는 끝까지 웃으며서 책을 덮게 하진 않는다. 힘들게 살아가는 삶들의 무게가 그저 '고단하다'는 몇마디 말로 끝내고 싶지 않났나보다. 작가의 선택은, 서운했지만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는 모든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책이 끝났다고 눈돌리지 마라. 그들에 대해서 '눈감지 마라'... 이렇게 말이다.

p32 " 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

p46 " 나는 왜 늘 그런 벽 뒤에서만 살았을까? 정용은 가만히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바람보다 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방, 소리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지는 집, 벽을 만나면 더 커지는 소리들.  진만과 함께 구한 광역시 반지하 자취방 역시 그랬다. 밤마다 웅웅웅 어디선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옆방 남자의 코 고는 소리와 위층 사람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심지어는 누군가의 이 가는 소리까지. 소리는 어두워질수록 더 커졌고, 더 깊어졌다. 정용은 그게 다 가난한 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p85 " 어디에서 읽은 적 있는데, 부모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거래요. 한데, 저는 그 말도 잘 이해되지 않더라구요. 용서하면 그 뒤엔 어찌해야 하는가? 그러면 그 다음에 서로 잘 지내야 하는가? 저는 이해도 싫고 용서도 싫어요. 그냥지금처럼 나쁘지만 않으면 돼요. "

p112 "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안 피곤한 놈들이나 책상에 앉아서 친절도 병이 돤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구!"

p141 " 진만은 생각했다.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

p216 " 정용의 몸은 마치 우그러진 캔처럼 어떤 부분은 날카롭고 또 어떤 부분은 납작해진 느낌이었다. "

p315 " 가난한 아빠들이 가난한 애들을 키우고, 가난해서 술 취한 아빠들이 다시 가난해서 술 취한 아이들을 만들고...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형.. 자꾸 술하고 얘기하는 거 같아요. "

#눈감지마라 #마음산책 #엽편소설 #짧은소설 #이기호 #연작소설 #장편소설 #한국소설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독서노트 #글 #책 #글쓰기 #글스타그램 #일상 #문장수집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토록 평범한 미래  (0) 2022.10.12
신, 만들어진 위험  (0) 2022.10.10
내가 행복한 이유  (0) 2022.10.06
사진의 이해  (0) 2022.10.04
공중곡예사  (0) 2022.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