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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by 기시군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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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으로 시작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로 이어진다. 한 권의 책안에 안으로 침잠된 사랑의 기억과 개별자인 '나' 밖에 존재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연대와 공감의 사랑이 공존한다. 기대하지 못했던 사랑시였다.  문학의 정치적 의미와 책임을 멋진시어들로 아름답게 풀어내는 장인의 서정시다. 10년간 써왔다는 40여편의 시 중 몇 장면만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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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을 보자. 시인에게 시와 사랑은 같은 말이다. 잠든 그(그녀)를 바라보며 ' 나는 오늘 밤 잠든 당신의 등 위로 / 달팽이들을 모두 풀어놓을 거예요 p13)라 중얼거리는 것, '단 한 여자를 위한' 순간, 사랑이다. 쓴잔에 무엇있을지는 잊자. 시가 되어버린 러블리한 표정의 작은 달팽이들 떠올리자. ☺️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 청혼 -p9
"

#백석 의 #나의나타샤와흰당나귀 가 오버랩된다. 진득한 시작. 책 사이사이 영롱하지만 묵직한 시어들로 '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시인의 다짐한다. '나는 단단하게 살아 있다! 잘 익은 간처럼p61'. 강한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말하는 순간 실천되는 사랑, 그 사랑의 새김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자의식의 검은 피p28'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빛', '너의 빛'일지 모르겠다.  

"
삶은 부사(副詞)와 같다고
언제나 낫에 묻은 봄풀의 부드러운 향기
언제나 어느 나라 왕자의 온화한 나무조각각상에 남은 칼자국
언제나 피, 땀, 죽음
그 뒤에, 언제나 노래가
태양이 몽롱해질 정도로
언제나
너의 빛
- 언제나 - p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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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속에 무겁게 담겨있는 '우리의 사랑'을 보자. 지금도 시인은 한달에 한번씩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시낭송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나갔지만 가슴깊이 남아있는 아이들의 '죽음'은 이 시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
방은 눈을 녹이는 뜨거운 손을 닮았다
방은 죽음을 쫓아 달리는 커다란 개다 겨울이 죽고 봄이 죽고
죽음은 항상 너무 빠르다
개의 헐떡거리는 혓바닥 위에서 담뱃불이 꺼지며 빛난다
- 방을 위한 엘레지 - p94
"

10.29참사에서의 이름모를 젊은이들에게처럼, 죽음은 항상 너무 빠르다. 지금, 오늘 슬프게도  '빠른 죽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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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시집을 내지 못했던 10년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람'들'을 사랑했던 한 사람들이 떠났다. 그 중 소중했던 한사람, 노회찬의원에게 전하는 시인의 목소리다.

"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완벽한 사실의 평면, 혹은 고통이라고 믿는 벽에 뚤린
아주 작은, 단 하나의 구멍
나는 그것을 통과해서 나갈 거니까
앞으로
앞으로
- 아뉴스데이, 새뮤얼 바버 (한 노동운동가에게) - p85
"

몇 장면 못담았다. 서정적인 시어로 세상의 책임을 지려하는 시인. 좋은 문학에 대해 생각을 많이하게 한 시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을 찾는 이유를 알겠다. 좋은시집이다.

덧,
사랑이란 단어는 입에 담지도 못할 주제에 객적은 이야기들만 어질렀다. 단어가 늘어붙어 껍질에서 쉬어버린다. 말의 냄새와 잡념이 진득하기만 하다. 떨쳐내야할 잡내들이 문장의 흉내를 내며 떠나질 않는다. 껍질만 남은 언어들. 벗겨내야겠는데 쉽지 않다. 못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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