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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by 기시군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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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본 가장 유니크한 소설이다. 정치적이면서도 펜끝은 그곳을 향해있지 않으며 , 제3세계 아프리카 문화정서와 가장 현대적인 프랑스문학의 향취가 혼재되어 있으며, 문학의 근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쉬지 않고 던지는 어떤 남미작가의 그림자와 이야기힘을 힘차게 휘두르는 #천명관 스타일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30대 하루키의 이미지까지 겹쳐지는 아주 독특한 질감의 작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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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세개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책은 세네갈출신의 프랑스 유학생 '디에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한권의 책을 낸 신인작가다. 그에겐 추앙하는 작가가 있다. 2차세계대전 이전 프랑스에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는 책을 낸 T.C엘리만이라는 미지의 작가. '흑인 랭보'라는 찬사를 받고 데뷔를 했지만, 각종 구설에 책도, 작가도 사라져 버린 상황이다. 디에간은 최선을 다해 그 자취를 쫒게된다. 우연히 술집에서 같은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작가와 만나게 되는 디에간은 그녀로부터 엘리만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듣게 되고, 사라진 그 책을 손에 넣게 된다. 이야기은 이렇게 시작되며 긴 소설의 전개 내내 다양한 사건과 만남이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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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문학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p76'이라 믿고 있는 청년지식인의 문학적 정취가 독특하다. 현학의 욕구는 문단사이에서 꿈틀대며, 시점의 전환, 서술의 방식은 일반적인 소설의 문법을 가볍고 무시하고 춤을 추듯 이어진다. 멋진점은 자신의 단점마져도 소설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직시, 용기라 하겠다. 흔들리는 지식인, 예술인의 영혼 자체가 예술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의 결과물. 자신의 새로움을 받으라 세상에 던졌고, 프랑스 문단은 2021년 콩쿠르상을 그에게 안김으로써 그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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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그는 ' 문학에서 순수함은 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다. 장르소설과 같은 사건의 발생과 추리, 이벤트들이 연속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끈다. 또한 '우울없이는 어떤 아름다운 것도 쓸 수 없다p133'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란하지만 조용한 낮은음의 단어들을 나열한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이 두꺼운(p552)책 전체를 관통하며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으며, 스스로는 '누군가의 영혼을 울리겠다p425'고 문학을 하는 야심을 고백하기도 한다.

32세의 세네갈 출신의 작가는 내게 낯설고 새로운 소설읽기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다양한 소설적 실험과 이질적인 사건의 굴곡이 읽는 속도를 방해하긴 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을 따라가고픈 욕심에 책을 놓을 순 없었다. 그 독특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p62 " 그렇다면 왜 쓸까? 알 수 없다. 어쩌면 알 수 없다.가 바로 우리의 대답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 "

p86 " ...말들만 남았다. 숨결과 느림, 눈길과 스침, 중단된 자국, 부름, 맞불, 감춰진 기호들, 언어를 기다리는 언어들, 그러다가 이내 취기의 명징함만 남았다. "

p108 "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는 언어의 셈세한 불꽃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면서 불꽃놀이 기술자로 저처하다가 결국 그 불꽃에 날개를 태워 먹은 야만인이 흘려놓은 침에 지나지 않는다. "

p129 " 넌 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늘 아리송하고 북잡하게 말하지. 그런 게 지적이고 성숙하고 생각 있는 거라고 믿지? 가장 심각한 주제는 물론이고 더없이 평범한 주제 앞에서도 넌 늘 생각이 흔들려. "

p151 " 작가들은 책 속에서 부모와의 문제를 정산하고, 혹은 부모와의 힘든 관계에 질문을 제기하지. 그러고 나면 늘 약간의 사랑이, 약간의 애정이 나타나 순수한 폭력 충동을 가라앉혀주곤 하고, 다 엉터리야! 삶이 뜻밖의 선물을 줬다고 해서 부모를 향한 어리석은 감상주의 속에 모든 걸 쏟아붓다니! 그런 추잡한 엉터리가 어디 있어! 난 계속 아버지를 증오할 거야. "

p271 " 엘리만은 문학은 원래 약탈의 유희라고, 자기 책은 바로 그걸 보여준다고 대답했고요... 그러면서 자기의 또 다른 목표는 창작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게 희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도 했죠. "

p498 " 너는 언제나 문화적 모호성이 우리의 진정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비극을 받아들리고 문화적 사생아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 단지, 난 네가 모호성이라고 부르는 게 지금 진행 중인 우리의 파괴를 가리는 술책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을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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