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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이중 작가 초롱

by 기시군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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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책을 골랐다. 등단하지 않고 소설집을 낼 정도의 실력파란 소문 때문에 찾아본 인터뷰였다. 작가 이미상은 등단도 하지않은 상태에서 2019 올해의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전형적인 소설을 싫어한다 했다. 따로 소설을 공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블로그와 SNS에 서평이나 영화평을 쓰다가 바로 쓴 첫 소설이 상까지 받았으니 그렇게 표현할만도 하다. 하지만 한권의 단편집을 읽고 난 후 소감은, 소설을 꾸려내는 내공이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작품들 사이에 흐르는 불균질함과 튐을 흠으로 잡을 수 도 있겠으나, 비전형에 대한 고민의 산출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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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간단하게 느낌을 정리해 두고 싶다.

* 하긴 : 운동권 출신 586 아버지, 딸네미가 지능이 낮아 괴롭다. 친구인 같은 운동권 출신 학원원장에 도움으로 딸네미를 스펙쌓기 외국 유학을 보낸다. 소설은, 생각 좀 있다는 중년남자의 허위의식을 쎄게도 질러버린다.

*그 친구 : 다시 586이다. 학출 '김'은 여공 '규'와 현장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어도 이들은 모임에 나간다. 다만 생각만 진보인 '규'는 아이를 돌보는 부분에선 여전히 가부장적이다. 이런 부부에게 '지경'이라는 여성이 개입한다. 인물과 사건 모두 현실이며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전형적이다.

*이중 작가 초롱 : 데뷰작가 초롱은 데뷰전 작품이 온라인에 노출되면서 곤욕을 치른다. 성폭력 피해자에 관련된 시각이 두작품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 논란이 된다. 이 짧은 소설에서 우리는 '작가'와 '소설'간의 관계에 대해 한번더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여자가 지하철 할때 : 아침마다 수진을 머리를 둘로 쪼개고 지하철을 탄다. 기성소설가들은 생각할 수 없는 파격이다. 일상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위한 진혼곡.

*티나지 않는 밤 : 병원사무를 보며 밤마다 소설을 쓰는 수진. 그녀에게는 두명의 남자가 있다. 영화를 만들다 빈털털이가 되어 동거를 시작한 남친과 이 시대 중년남성을 상징하는 개꼰대 '원장'. 사건은 우연히 수진에게 스미고 수진은 '소설'적으로 반격한다.

*살인자들의 무덤 : 여성문제에 대한 직설적이며 전위적인 작품. 평하기가 가장 애매했던 작품. 페미니즘에 관련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 생각하게 한 작품. 몇 구절은 잊지 못하겠다.

*무릎을 붙히고 걸어라 : 소녀와 종교, 그리고 섹스에 대한 보고서. 리버럴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은 섹스에 대한 관점에서 분기하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 여성과 돌봄, 그 편한 결말이 싫어 어드벤쳐로 돌격해 버린 작품. 후반부, 핍진성 따위는 다 던져버리고 달리는 용기는 흉을 봐야할지 응원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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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컨트롤을 벗어나는 작품과 성공한 작품이 혼재한다. 재기와 위트는 유지되나, 설득력과 소재의 폭은 작품마다 편차가 있다.  '결정적 한순간'을 위한 개성적인 작품을 고민하는 작가. 그 '결정적 한순간'을 위해선 모든 전통과 상식을 깨트리는 작가가 그녀 였다.  마지막에 함께 실려있는 #전승민 평론가의 평론은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었으나, 작가의 작품 실제보다 더 선언적이며 정치적으로 힘을 준 느낌이다. 특히,  #티나지않는밤 에서 노선이 다른 두 페미니즘 진영의 논쟁을 분석하는 부분은 오래전, 노동/학생운동의 사상투쟁을 연상시킨다. 디테일에 너무 몰입하면 숲을 보기 힘들게 된다. 아무튼 이미상은 문제적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어떻게 변화, 성장해 갈지 유심히 지켜볼 생각이다.

덧,
명절 전날, 운동하다 청춘시절 감옥에까지 다녀온 선배를 만났다. 내가 아는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이고 가장 생각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머리속에서는 자기가 운영하는 학원의 매출과, 스펙에 추종으로 무장된 강력한 능력주의가 가득차 있었다. 못사는 동네를 지나갈때 자신의 아들에게 '노력'하지 않으면 저렇게 살수있다는 협박이 가능한 운동권 출신. 논술 쪽 유명강사라, 플라톤부터 고전 사상, 사회문제 등 깊이있는 논술강의로 큰 돈을 벌고 있다는데, '생각'은 '기능'으로 장식되어 '자본'의 재생산과 상속에 몰입하는 형국이다. 술에 취해 개지랄 떨어줬더니, "기시야. 난 네가 무섭다." 란다. 무섭긴 뭐가. 못변해 경쟁력 떨어지는 날 안타까워하는 거겠지. 헤어지고나서 이 책이 계속 떠올랐다. 사람들은 자신이 변해가는 과정을 처음엔 인식하다가 결국엔 무엇이 잘못된건지 깨닫지도 못하고 죽어간다. 책을 교양자랑,지식자랑 용도로만 쓸바엔 읽지마라. 그 선배에게 하고싶은 말이었다.

p20 " 며칠 전, 초롱은 이렇게 썼다. '이름 튀어봐야 뭐가 좋아? 몰카 영상 뜨면 찾기 쉽기나 하지. 자식 이름으로 운동하는 것들은 싹 다 죽어야 돼.' 자기 언어를 가진 자식을 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

p53 " 이론에 밝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든 대화에 껴보려고, 한몫 잡아보려고 하는 수작질. 대화를 세속으로 끌어내리고, 가십으로 처박고, 그러고나면 분위기는 속절없이 뒷풀이 쪽으로 넘어갔다. "

p171 " 언제나 생략이 노출보다 나은 법입니다. "

p235 
" 우리는 무엇을 기대한 걸까? 섹스는 머릿속에서만 걸쭉하게 빛날 뿐 몸으로 내려오자 그저 당황스럽고 어색할 뿐이었다. "

p250 " 애지중지한 장난감일수록 마지막에는 더 지긋지긋한 것처럼 "

p253 " 모든 부부 동반 모임은 플라토닉 스와핑 모임 아닙니까? 부부동반은 부부 교환의 암어 아닙니까? 솔직히 다들 상상하셨잖습니까. 저이가 내 남편이라면, 저이가 내 와이프라면, 상상했잖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부부 교환의 설렘을 품고 모임에 나왔습니다.그 환상 없이, 그 상상 속 재배치 없이, 어떤 부부가 토요일 밤마다 안락한 소파를 등지고 종교 모임에 나올까요?˝ 

p264 " 너희는 클 거야. 자랄 거야. 그럼 너희도 다른 사람의 가슴으 찢어놓을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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