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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모비딕

by 기시군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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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소설이 문학사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탐미적 성취가 있어서라기보다 그 시대의 '인간군상'을 세밀하게 그려낸 업적 덕분이다. 리얼리즘의 시작이며, 문학예술이 단지 세상의 묘사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오래 벼르던, 모비딕을 읽었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내게 모비딕는 1800년대 중반의 미국, 미국의 산업, 그들의 꿈과 이상, 삶의 행태들을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컷다. 남북전쟁 이전, 석유가 아직 산업발전의 원료로 활용되기 전인 초기 미국 경제의 중추에는 포경산업이 있었다. 고래를 잡는 미국인들은 석유를 캐듯 향유고래 머리부분에 가득한 '경뇌유'를 확보하려 전세계 바다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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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작은 화자인 '이스마엘'이 당시 미국 포경산업의 핵심요지인 낸터킷, 뉴베드퍼드 항구를 돌아다니며 승선할 수 있는 포경선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작가 자신이 4년간 포경선을 탓던 덕분인지, 선원들, 상인과 여관 주인 등, 항구 주변의 인물묘사가 아주 입체적이다. 근대 미국의 시작점의 큰 장면을 본 듯하다. 바닥에 깔려있는 청교도적 문화와 식인종까지 동료로 인정할 수 있는 개방성, 요즘의 벤쳐투자와 같은 공격적인 포경산업에 대한 투자와 이익회수방식 등이 묘하게 어우려지며 미국의 역동적인 시작을 엿본 느낌을 준다.

본격적인 고래와의 싸움은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의 350페이지 쯤이나 되어서야 시작한다. 초반의 대부분은 '고래학'이라 할만단, 고래라는 생물의 특성, 역사, 주변 이야기 등등의 다양하고 방대한 '썰'이 차지하고 있고, 이 '썰'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우리에게 백과사전 식 지식을 전하려 노력한다. 이 지루함을 조금씩만 참고 넘기면 작가의 주특기인 해상사냥의 다양한 다이나믹한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미친 외발이 '에이헤브' 선장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선원들이 어떻게 전설의 흰고래 '모비딕'과운명적으로 얽히는지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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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는 어드벤쳐 상업소설이다. 투잡을 뛰며 데뷰작의 성공시킨 멜빌은 공부를 많이 한것 같다. 문학적으로는 세익스피어 등 고전을, 지식으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포경산업을 들고 판것으로 보인다. 보람은 있어서 덕분에 후대에,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성과 전문성을 가진 모험소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당대의 냉대는 그 문학성과 전문성 탓일 것이다.

나에겐 세익스피어의 영향권으로 쓰여졌을 '희곡'형식으로 부분들은 어색했다. 특히나 1등 항해사 '스타벅'이 '에이해브'선장의 총을 들고 잠든 선장을 죽일 것인가 말것인가를 독백으로 고민하는 1페이지반은 인상적이였지만, 너무 대놓고 세익스피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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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래사냥을 대하는 시각 등의 시대적 한계는 논할 것도 없고, 작품 자체의 작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미국의 헤리티지로 지정될 자격은 충분하다. 근대소설이 가져야할 기본이 개인과 세상의 불화라면, 당대 이처럼 집요하며 치열한 갈등의 장면이 가득한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읽어도 작품 플롯은 인과관계를 잃지 않고 있으며 이야기는 치밀하다. 혼자 생각에 '지식'과 '문학성'에 조금 만 힘을 빼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만, 역사엔 가정이 없다. 20세기 미국인들은 이런 '모비딕'이여서 더 추앙을 보냈나 싶기도 하다.

p185 " 그리하여 경뇌유를 생산하는 고래(향유고래)에게 마침내 '정액고래sperm whale'라는 명칭이 주어졌을 것이다. "

p418 " 큰 고래의 기름통에서는 대게 500갤런의 경뇌유가 나오는데, 불가피한 사정 때문이기는 하지만 불안정한 자세로 최대한 많은 양을 확보하려다가 상당한 양의 기름이 엎질러지거나 새거나 흘러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

p437 " 고래의 경우는.... 혈관에 판막이 없는 것이 고래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작살처럼 작고 뾰족한 것에 찔려도 모든 동맥계에 걸쳐 치명적인 출혈이 시작되고, 깊은 바다 속에서 강한 수압을 받게 되면 출혈이 더욱 심해진다. "

p593 " 지난 몇년 동안 북서 해안에서 미국의 어부들이 해마다 죽인 수염교래만 해도 1만3천마리가 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런 사태조차 이 문제에 대한 반론으로는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

p667 " 바보 같으니! 나는 운명의 부하다. 나는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너희 졸개들은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모두 내 주위에서 서라. 모두를 보아라. 한 늙은이가 다리를 잘리고 부러진 창에 기대어 한 발로 버티고 서 있다. 그것이 에이해브. 그의 육신이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영혼은 백 개의 다리로 움직이는 지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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