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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by 기시군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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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 안으로 달렸다. 얼핏 알던 정희진박사. 5권 글쓰기 시리즈가 있다고 해서, 그 중 제목이 가장 끌렸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소소한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웬걸, 묵직한 주제에 글들이 거침없다. 때때로 감탄하며 어느경우엔 서운해 하며 책 속을 즐겼다. 좋은 독서는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페미니스트 여성학자. 녹색당 당원이기도 한 생태주의자. 저자는 소수자를 위한 활동은 소수자의 언어로 '융합'된 언어를 가질 때 더 효과적이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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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글쓰기 작법론에 대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의 근본, 우리의 가치관과 언어의 관계를 고찰한 책이다. 이미 강자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성, 노동자, 외국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좀더 깊게 사유하는 법, 다르게 쓰는 법을 알리려 노력한 그 결과물들의 모음이다.

나의 '위치'부터 시작하자 말한다. 나의 사회적,경제적,계급적 위치. 시작점이다. 스스로는 객관적이라 자만하지 말라 말한다. 나의 '위치'에 따라 나의 글쓰기는 달라질 것이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사유하라 권한다.

사유에 게으를 때  우리는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현실을 가위로 잘라 재단(裁斷)이 없는 상태p53' 즉 무지의 상태가 된다한다. 이미 권력의 오염된 언어에 갇힌 우리들은 권력화된 무지상태가 되며 '권력화된 무지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다수자의 공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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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권유한다. 우리는 '공부'를 해야한다고. 공부의 최고방법론은 '쓰기'이다. 쓸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쓸때 내가 쓰는 이 단어의 정확한 효용을 확인할 수 있다. 더 좋은 방법은 '융합적 글쓰기'이다. 다양한 지식을 통달한 다음에 쓰라는 말이 아니다. 절충도 아니다. 박사의 '융합'은 Trans.. 즉 넘어서 가로지른다는 말이다. 지식의 경계를 가로질러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의 지식의 접점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불협화음' 그리고 그에 따른 관점의 이동이 새로운 앎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자. 장애인의 반대말은 일반인라는 말은 다수 일반인의 주관적 관점이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이라는 문장으로 쓰기의 관점변화를 꾀해야한다. 섹스와 젠더는 다르다. 생물학적 분석도 사회학적 분석도 있다. 일단 알자. 모르면 빼앗긴다. 젠더라는 단어를 가져간 다수자들은 언론을 통해 ‘젠더 갈등’이라는 이슈를 만들어 낸다. 실상 이슈의 대부분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빼앗긴 ’쓰기‘는 힘있는 계급에 복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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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하지만 몇가지는 집자. 그녀의 저술활동이 생태주의, 여성주의, 환경주의의 확산에 목표가 있다면, 좀더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전략적 글쓰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사가 적으로 타겟팅한 다수 기득권에 대한 범위를 지금보다 조금 좁히는 것이 어떨까 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초기부터 과학 기술의 최대 성과는 실업이었다.p112'라는 문장은 일부의 사실만을 담고 있다. 과학기술의 생산력 향상이 저자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더 범용적인 이해다.

그리고, 현실정치판에서 진보과 보수구조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김어준을 전광훈, 강용석과 같은 관종의 부류로 묶어버리는 것은 현실 정치판에 대한 무관심이거나 실수다.

기타 한글전용과 한자병기 이슈(박사는 병기에 찬성한다.) 등에서 보이는 '지식인적인 결벽증'도 눈에 뜨기는 하나, 결론적으로는 이런 작은 몇가지 케이스를 제외하곤 박사의 주장과 활동에 대해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지금처럼 페미니즘이란 단어 자체가 욕처럼 낙인찍혀버린 시대는 비정상적이다. 여성주의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삶 자체여야 한다. 생태주의는 언젠가 찾아올 비극이 아닌 눈앞에 닥친 현실의 재앙에 대한 가치관이다. 또한 평화가 영구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정희진 박사의 이러한 저술활동은 자본과 권력에 숨죽이거나 협조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살고 있는것이 맞는 것인가'하는 뼈를 때리는 질문으로 들린다. 답은 어렵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묵직하다.

p11 " 융합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가치관, 연결 능력이다. 평화학, 여성학, 환경학은 하나의 학문 분과가 아니라 가치관이다. "

p33 " 니체, 데리다, 버틀러를 '잇는' 현대 철학의 가장 큰 성과는 인간의 본질이란 것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

p78 " 인간의 모든 지식은 프로이트가 창안한 정신분석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식은 인식자의 심리적 산물이라는 뜻이다. 앎은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한다는 건 결국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p109 " 이성과 감정은 모두 근대성의 산물이며, 감정은 이성을 설명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차적인 가치다. "

p129 " 인류에게 교육이 절실했던 시기는 백 년 전이다. 교육의 목적이 계몽이었던 건 잠시였고, 이후의 학교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계급을 재생산하는 제도였다. "

p151 " 차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공정함이 아니라 배려와 관용이다. 차이는 해소하거나 인정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융합은 차이의 발생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사유, 즉 권력과 지식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자연스러운 차이는 없기 때문이다. "

p176 " 지금 세대 갈등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청년과 중년의 갈등이 아니라 계급 문제다. 20대는 어떤 부모를 두었는가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 세대 갈등의 실상은 '부모가 가난한 젊은이' 대 '50대 부자'의 싸움이다. "

p221 " 강자의 주관성은 객관성으로 간주되지만, 약자의 주관성은 피해 의식이나 지나친 요구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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