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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즐거울 것 없는 '즐거운 일기'를 다시 읽었다.
아무일도 없는 하루였다. 그저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엔 '정화'를 위한 비극이 필요했을 뿐이다. 최승자시인의 시집중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한권의 시집이 오롯이 슬픔과 공포의 까끌한 걸음으로 끝간데 없는 낮음의 늪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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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늪은 죽음을 품고 있다. 과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죽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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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없는 어디에서 죽음은
내가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없는 어디에서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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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멀리서 나에게 눈길을 돌리던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다가올지도 모른다. 벨소리와 함께, 또는 다른 갑닥스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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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그 전화선의 마지막 끝에 동굴 같은
썩은 늪 같은 당신의 구강口腔이 걸려 있었다.
어느 날 그곳으로부터
죽음은 결정적으로 나를 호명할 것이고
나는 거기에 결정적으로 응답하리라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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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저 끝을 기다리는 절망만으로는 쥐고 있는 삶이 너무 안쓰럽다. 가만히 속삭이는 한마디는 위태롭기 때문에 더 아름다워지는 삶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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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20년 후에, 지芝에게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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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아름다움의 세계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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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
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
우리가 지나쳐온,
아직도 어느 갈피에선가
흔들리고 있을 아득한 그 거리들.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
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
그러나 나는 다만 들이켜고 들이켜는
흉내를 내었을 뿐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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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너이고 싶은 마음의 최대치'와, 그걸 품에 안고 같이 걸어온 걸음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다만 사랑은 '현실'이라는 장막 앞에서 유한의 결론으로 마무리될 뿐이다. '건조한 먼지'같은 생활 안에서 밥을 먹고 슬픔을 삼키는 일상안에서 사랑은 '어느 날'이나 떠올릴 수 있는 무엇 정도로 갈음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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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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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쓰는게 아니라 쓰여진다. 시인은 참을 수 없어 시를 쓰게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것들 때문에 튀어나오는 문장들은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시는 그렇게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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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시인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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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탁으로 완성된 시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날것, 비위를 건드리는 말들이라도 이렇게 아프게 뱃속에서 세상밖으로 튀어나오는 시를 좋아한다. 최승자시인의 시가 그렇다. 가끔은 이렇게 끝간데 없는 비극의 정서가 사람을 위로하기도 한다.
가끔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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