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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돌연한 출발

by 기시군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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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한출발 #카프카 #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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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부모는 자식들을 바보 또는 인형으로 만들거나, 어쩌다 가끔 '천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카프카의 삶은 권위주의적 부친의 폭력과 소심한 모친의 비협조로 인해 안으로 타들어가는 인생을 살았다. 병약했으나 살아있고 싶어했고, 자신의 생존을 '글'을 통해 증명하려했다. 읽히기 위한 글보다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였던 집필의 결과물은 우연찮은 기회로 세상 많은 고통받는 청년들의 공명에 힘입어 세계문학사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카프타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여 이쁘게 책이 다시 나왔다. 책 덕후에 입장에서 안 살도리는 없었고, 손에 든 책을 다시 안 읽을 도리도 없었다.  ☺️ 어릴때 읽던 카프카와는 또 다른 맛을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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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을 보자. 본문 1부부터 3부까지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과 동일하다. 앞부분 카프카의 육필원고, 그림들이 몇장 실려있고, 4부는 번역자 전영애님의 카프카에게 보내는 '시'들이 실려있다.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짧은 작품들도 많다. #변신 을 포함하여,  '비인간'을 소재로 하는 3편만 정리해 보자.

*학술원에서의 보고 : 말을 할 줄 아는 원숭이가 학술원 청중들에게 동물의 세계에 대한 경험을 발표한다. 이미 오년의 세월을 보낸 원숭이에게 이 자리는 '순응'의 자리일지, 인간에 대한 '비꼼'의 자리일지 아니면 '자유'에 대한 독백의 자리일지 모르겠다.

*굴 : 화자는 두더지 같다. 성을 둘러싼 통로, 광장, 중앙광장 모든 곳에 굴을 판다. 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적'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그 가치를 훼손하는 '소음'이 발생한다. 그는 '소음'을 잡으려 최선을 다한다. 작가는 이 소재를 1차 세계대전의 참호에서 얻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자신의 글쓰기 자체가 '굴파기'와 유사하다.

*변신
일단, 명심하자. 변신하고 있는 것은 그레고르 잠자가 아니라 그의 식구들이다. 그레고르는 이미 변신한 상태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의 돈벌이에 의지하던 아버지, 어머니, 누이가 무능력해진 주인공을 두고 벌이는 변신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가장 오빠를 사랑했던 누이는 '저건 사라져야 해요'라고 말한다. 그레고르 대신 취직을해 다시 가장의 권위를 찾은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던져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썩어가는 부위를 치료해줄 생각은 그의 어머니에게 마져 없다. 그는 죽고 시체는 파출부가 알아서 치울 것이며 가족들은 홀가분하게 소풍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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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아버지와 관료주의로 상징되는 '권위'에 결코 이기지 못한 삶을 살았다. 아주 늦게 아버지에게 보낸 43페이지의 진심이 담긴 편지도 어머니 때문에 전달되지도 못했다. 40여년의 삶은 그에겐  시지프스처럼 명령과 실천의 반복적이며 무의미한 숨쉬기였을지 모른다. 그에게 글은 사는것과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글 안으로 뛰어들어, 원숭이가 되어 '니들 인간이란 종은 말이야' 하면서 야유를 퍼붇거나, 일생을 땅굴을 파는 두더지에 빙의하여 자신의 삶을 야유했다. 변신에선 식탁에 올라간 요리가 되어 주변 '인간들의 칼질'의 잔혹함을 들쳐냈다.

사실 카프카의 진심은 본문에선 정리하지 않았던  단편  #선고 에서처럼 아버지와 싸우다 강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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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을 두고 까뮈와 사르트르는 인간이 처한 부조리를 표현한 실존주의 작품으로 해석했다. 다른 해석들로는 권위를 상징하는 아버지와의 대결에서 스스로를 자해, 소멸시키 자신의 분노와 도전을 표현한 작품이라 보는 이도 있다.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력 상실이 가져오는 비인간화를 파격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도 있다.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카프카는 별 신경을 쓸것 같진 않다. 예전에  어느 철학자의 강의에서 카프카 관련 멘트가 생각난다. 그레고르는 처음엔 괴로워했지만 경제적 가장으로써의 의무가 사라진 상태를 나중엔 즐겼을지 모른다 했다. 실제 소설 중간에 천장에 매달리는 모습, 벌레의 몸에 적응하는 모습 등이 그려지기도 한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카프카는 이 소설을 쓰면서 해방감을 느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돌을 밀어올리던 시지프스가 나 이제 돌을 밀 힘이 없어. 그냥 깔려죽을래. 그러면서도 자신을 그런 처지에 몰아논 신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쾌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희망'이라는 단서는 책을 탈탈 털어봐야 한줄도 떨어지지 않을 책에서, 내가 찾은 유일한 '희망' 비슷한 무엇이다. 그 희망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따뜻함은 최소한 카프카의 희망과는 관련없다. 서글픈 희망일지 모르겠다.

덧,
세계적 작가라는 칭호에 눌려서 그렇지 카프카를 읽는 다는 것은 호불호가 명확하다. 사실 '변신'말고는 아주 재미있다할 작품이 드물다. 서구에선 카프카스럽다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당혹스러운 모순상황을 말하는 단어라 한다. 이상한 이야기를 리얼하게 쓴다. 필사적으로 써내려가는 느낌과 그의 필사적인 고독과 마음여린자의 괴로움에 주파수가 맞으면 카프카의 팬이 될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쓰는, 아니 쓰여지는 카프카의 소설은 읽혀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쓰여지기 위해 만들졌다는 점에서 '일기쓰기'와 유사하다. 작품들의 편차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난 好에 한표다.

p42 [옮긴이 서문] " 그렇다면 삶이란? 대답은 없이, 카프카의 글은 그저 끈질기고 막막하고 헛된 기다림을 보여 준다."

p47 [옮긴이 서문] " 작품 자체에서는 자취도 찾아볼 수 없는 '희망'을 읽기 때문이다. "

p137 [변신] " 그러고 나서는 셋이 함께 집을 나섰다. 벌서 여러 달 전부터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전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그들이 탄 칸에는 따뜻한 햇볕이 속속들이 들엉와 있었다. "

p145 [시골의사] " 나는 너의 큰 상처를 찾아냈다. 네 옆구리의 이 꽃으로 말미암아 너는 죽을 것이다. 가족은 행복하다. "

p190 [선고] " ' 부모님, 저는 그래도 당신들을 언제나 사랑했었답니다. ' 그러고는 몸을 떨어뜨렸다. "

p194 [학술원에의 보고] " 진실이 문제될 때면, 위대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세련된 매너쯤은 내팽개쳐 버리잖습니까. "

p211 [굴] " 그러나 내 굴의 멋진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정적이다. 물론, 그 정적은 믿을 수 없다. "

p246 [굴] " 모든 이론을 떠나, 나는 소리의 진짜 원인을 찾기 전까지 이일을 멈추지 않겠다. "

p275 [독수리] " (독수리) 부리를 곧장 나의 입을 거쳐 내 몸 깊숙이 찔러 넣었다. 뒤로 넘어지면서 나는 해방감으로써 느껴졌다. 모든 심연을 채우고 모든 강둑을 넘쳐흐르는 나의 핏속에서 그놈이 구제 불가능하게 익사하는 것이다. "

p283 [만리장성의 축조 때] " 인간적 본질이란, 날리는 먼지의 본성처럼 그 바탕에서 가벼워, 속박을 견디지 못하는 법이니, 스스로를 묶어 놓으면 머잖아 미친 듯이 그 족쇄를 마구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

p348 [시:카프카와의 대화] " 집착은 없어요. 문학에 대해서, 그게 나 자신이거든요 / 집착이라면 어떻게 떨쳐 볼 수도 있겠지만 / 나 자신을 부수어 버릴 수도 없고...... "

p363 [편집자가 카프카에게] "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희망은 충분히, 무한히 많아. 다만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야.' 베냐민의 해석에 의하면, 카프카에게 구원의 수혜자는 인간이 아니다. .... 특이한 피조물....미숙한 인간이다. 불안은 사고를 망치지만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인간들에 비하면 차라리 희망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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