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각각의 계절

by 기시군 2023. 5. 26.

✔️
#각각의계절 #권여선 #문학동네

📕
처음엔 다시 뒤늦은 후일담문학인가 싶었다. 아니였다. 권여선 작가는 늙어버린 운동권 지식인의 뒷이야기를 팔고 싶은게 아니라 당신의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슬픔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로 읽혀지지 말아야할 소설이며, 우리와 함께 살며 늙어가는 선배들의 삶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반추‘를 불러오는 소설집이다.

📗
7편의 소설을 모두 다루고 싶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슴벌레식문답  

p 27 “ 정원의 이십 주기에 나는 혼자 술을 마시며, ‘사슴벌레’라는 마법의 버튼 하나가 더 생긴 듯 눈을 빛내며, 무슨 관계든 끊어. 우리가 어떻게든 관계를 끊고 살아. 속이던 삼십 년 전 정원을 생각한다. “

p 37 “ 나는 주문을 외우듯 다시 사슴벌레식 문답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들어는 왔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인지도. ”

‘안녕, 주정뱅이’ 때부터 알았다. 작가는 언제나 술과 담배를 슬픔의 눈물처럼 흘리며 말하는 작가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첫 단편부터 알콜없이는 견딜 수 없는 주인공의 ‘슬픔’이 아프게 보인다. 그녀와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든 방식으로 ‘버티고’ 살아왔을까에 대한 아련한 연민, 비겁한 삶 속의 나는 ‘뭘 버티고’ 살고 있는걸까.

#실버들천만사

p 58 “ 잠시 뒤 채운은 증상이 시작된 걸 감지했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빨리 뛰었다….. 이마에 살짝 배였던 땀이 어느새 얼굴 옆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슴을 누르고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

p 75 “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

이혼한 엄마와 첫 여행을 떠나는 딸, 자신들만의 삶을 버티느라 다들 다친다. 말리지말라며 휘드르는 몸짓에 옆에서 틀어진 사랑일 망정, 아끼는 사람들도 상처 입는다. 땀이 흐른다. 모두에게.

#하늘높이아름답게

p 87 “ 집에서는 딸들이  감히 책을 펼치고 공부하는 꼴을 보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시집가기 전까지 알뜰히 착취해야 마땅할 딸들의 노동력은 가축이나 토지와 마찬가지로 그 생산성의 크기에 따라 가치가 매겨졌으므로.”

p 115 “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수다의 효용을 믿는다. 남자든 여자든 모여서 남에 대해선 뒷이야기, 자신에 대해선 자랑을 떠든다. 왜들 이렇게 ‘즐기는지 ’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끝간데 없는 불안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적인 태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내려면 계절별로 각각의 힘이 든단다. 기억하자.

#무구

p 142 ” 현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내가 왜 이혼했나면 아무래도 휴지 때문인 거 같아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현수에게 휴지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

몇십년 만에 만난 절친현수는 이혼을 하고 두아이를 키우며 지방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 있던 소미는 현수의 추천으로 땅을 산다. 하지만 그 땅 주변으로 공동묘지가 들어선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먹고사니즘에 친구까지 팔아 먹는다는 뻔한 드라마일까? 그렇지는 않다.

#깜빡이

p 134 ” 엄마는 귀신처럼 내가 약간이라도, 효도까지는 아니야 언니, 효도까지는 절대 아니고, 그 뭐야 그냥 불효라도 좀 덜 해보려고 하는 순간에 그 기회를 딱 빼앗는다. “

혼자사는 늙은 엄마, 이모까지 불러내서 자매들과 외식을 강권한다. 기껏 시간내 나간 외식은 치매끼가 있는 이모의 깜빡 덕분에 ’깨빡‘나 버린다. 세월은 우리에게 누구에게‘는’ 꼭 방해받는 일생을 살게된다. 지금의 그들이 내일의 나일지 모른다.

#어머니는잠못이루고

p 178 ” 세상에는 분명히 위가 있고 아래가 있잖아. 안그래요? 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위하고 아래는 분명히 차별이 지거든요. ”

박사과정에 있다지만 낮에는 상가 사무실 알바, 밤에는 카페에서 논문을 정리하는 힘든 삶을 사는 ‘오익’은 요즘 잠 못드는 엄마 전화를 자주 받은다. 오빠 뒷바라지 때문에 자신은 피해자라 난리를 치고 있는 우울증환자 여동생의 포악질 때문이다.

#기억의왈츠

p 218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온 것은) ” 내가 가지고 있던 어두운 정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네 살의 삶이 품을 수밖에 없던 경쾌한 반짝임 사이에서 빚어진 어떤 비틀림 같은 것,  그 와중에 발사되는 우스꽝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

술자리에서 떠드는 사람중에 태반은 자기과시가 주 목적이다. 하지만 오래전 대학원을 다닐때 나를 좋아했던 ‘경서’는 ‘세상의 모든 텍스트들을 정교하게 읽고 분석하는 걸 즐기는 사람’으로서 술자리에서 자신의 분석을 검증받고자 떠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음이 비어있는 날 왜 좋아했던 걸까?

📘
반추의 힘을 믿는다. ’각각의 계절‘을 버티는 우리들에겐 용기와 도전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긴 시간동안 나와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들이 왜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지 ’반추‘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안엔 후회도 추억도, 고통과 슬픔도 담겨있다. 평소 일상이란 단어로 묻어버리는 이런 일들을 이런 ’책‘으로 다시 떠올려 본다. 반추는 어찌보면 먹었던 걸 다시 게워내서 다시 씹는 비위상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혀끝까지 음미하며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비리지만 좋은 책이다.

덧,
‘기억의 왈츠’를 읽다 떠올랐다. 대학 신입생 시절, 3일안에 자기에게 고백하면 사귀어 줄수 있다는 과동기 여자아이가 있었다. 농담으로 치부하고 무시했고 3일이 지난후 나에게 ‘기한이 끝났다’며 통보를 했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다음에 알게 되었다. 같은 스무살, 어린 그녀는 큰 용기를 냈던 것이었다. 뒤늦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할 수 가 없다. 이 후 오랬동안 좋은 ‘여사친’인 그녀는 이젠 세상에 없다.

#각각의계절_기시리뷰 #한국소설 #단편집 #신간소설 #안녕주정뱅이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독서노트 #독서기록 #책리뷰 #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남주평전  (0) 2023.05.30
문맹  (0) 2023.05.29
흉가  (0) 2023.05.24
내 이름은 빨강  (0) 2023.05.22
트러스트  (0) 2023.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