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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창백한 불꽃

by 기시군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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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불꽃 #블라디미르나보코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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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나보코프에 대한 오해도 풀었고, 관념적이지만 유니크한 코메디같은 감각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걸로 나보코프는 되었다 싶었는데, 어느 인친님으로부터 이 책 '창백한 불꽃'이야기를 들었다. 포기하셨다는데 급, 궁금해졌다. 뭐 별거있겠냐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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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에는 존 세이드의 마지막 시 ' 창백한 불꽃'이 있다. 이 시는 자연, 삶, 죽음, 존재 등 묵직한 의미를 담고있다. (난해하다는 소리다. 🥲) 소설의 전개는 일반소설과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4개 쳅터로 구성된 이 시를 세이드의 이웃사촌이자 슬라브문학을 전공한 교수 킴보트는 길고 깊은 주석을 달면서 시와 자신의 삶을 연결시켜 나간다. 소설은 주석으로 해석하는 사람의 내적의미와 그 해석을 당하는 '것들'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그 과정에서 킴보트는 시와 관련있는 것들, 그것과 관련없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심리적 여행을 자기 마음대로 펼친다.  일종의 부르마블식 혹은 윷놀이식 글쓰기라 할까. 시의 ‘행‘에 따라 관련 단위서사를 왔다갔다하며 구경해야한다. 순서대로 기술된 서사의 친절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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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롤리타는 비교가 안된다. 플롯부터 문체까지 평범한 것이 없다. ‘운문소설'이라고 평가 받기도 한단다.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가기가 힘들다. 두어문단을 읽고 있다보면 내가 어디로 가있는건가 궁금해진다. 상당히 깊이 있는 문학적 사전지식이 필요하며 상징적 의미가 너무 많아, 따라가기 힘들다. 😭 (한 세번쯤 포기를 고민했었다. )

엘리트문학의 정수, 언어지상주의 문학의 표본을 보여준 듯 하다. 알려진바로 나보코프는 일상생활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러시아 귀족 출신에 일상 뿐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 애정도 비판도 있을 수 없다. 자기가 가장 많이 알고 편안한 '언어'안에서만 살림을 차렸다. 물론 이런 태도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의 길을 바라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보료ㅔ비키에 나치에, 거대담론에 질릴만큼 질린 인생, 자신이 가장 행복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에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 이다. 언어라는 놀이터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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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읽어는 내었지만 잠시 멍해지긴 했다.

천재의 글쓰기가 맞다. 내면에 대한 치밀한 구성에 따른 기술.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지롭게 만들었지만 나름의 근거와 논의점을 구성하고 있다. 어쩌면 천재에겐 가장 쉬운 글쓰기 일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소설의 세부단위의 인과성에 대한 부담이 주는 글쓰기. 머리속 자동 기술되는 생각의 상념들을 시로 표현하고, 그 ’행‘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장을 새기면 되는 작업들이다.

이 책에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문학이 도구로만 작용하는 그룹의 반대편에, 문학이 예술을 위한 예술로만 의미를 가진다 말하는 작가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언어로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를 극단까지 갈 수 있는 작가. 그는 말했다. ’ (자신의 작품은) 작품은 한번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 읽는거랑 같다. 읽고 또 읽거나 읽고 읽고 또 읽거나..' 두번을 읽으면 조금 더 이해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책에 고문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그의 풍성한 교양적 지식을 따라갈 그릇이 못된다. 😂#롤리타 라는 선물에서 멈췄어야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완독‘ 자체로만으로도 해냈다는 만족감을 주는 책을 만났다. 유일한 보람이다. 😃

덧,하나
답답해서 관련자료를 한참 뒤져봤다.  인상에 남은 평들이 몇가지 보였다. 세이드와 킨버트는 작가 스스로를 조롱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암는다. 어떤 평론가는 절대 진지하게 읽으면 안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외부에대한 관심없어 자기 자신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이미지와 생각들을 시적으로 표현할 뿐, 텍스트 바깥으로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유희적 글쓰기라는 것이다. 발표 당시에도 소수의 열광적 지지자를 빼고는 문학 일반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또하나의 장벽은 ‘번역’이다. 제임스조이스, 나브포코 등은 형태소단위로 사고를 한다고 한다. 글자의 재배열을 통해 새로운 글짜를 만들어내며 아마 관계도 없는 철자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단어와 의미를 직조해내는 언어의 유희를 한국어로 번역해 읽는 다는 건 정말 의미가 약한 일이다. 번역을 통해서 나보코프를 이해해야 하는 독자들에겐 너무 높은 벽이다. (원서강독 가능하신 분들껜 원서를 추천드린다. )

덧, 둘
본문보다 해설이 더 재미있다. 간만히 풍성하고 미련한 독자를 잘 끌어주는 해설을 만났다. 😏

[시부분]

p51 “ 인생은 어둠 속에서 갈겨쓴 메시지다. ”

p74 “ 삶이 털복숭이 쐐기벌레처럼 달려갔다. ”

p81 “ 영원한 삶 - 그 근거가 오식 하나였다니! ….. 다로 이것이다.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의 결이며 꿈이 아니라 거꾸로 뒤집힌 우연이다. ”

p90 “ 전부 ‘시집’이라고 명명하고,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주석부분]

p122 “ 나무 아래 / 흔들리는 텅 빈 작은 그네. / 이런 것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네. ”

p137 “ 저녁은 낮을 찬미하기 위한 시간이다. ”

p170 “ ‘허위의 먼 풍경’이 무시무시한 의무를 정말 수행하고, 우리 손에 놓인 시는 그저 남겨진 ‘그림자’뿐인 오늘날, 우리는 이 시행 속에서 거울의 유희와 가물거리는 신기루 이상의 무언가를 읽어내지 않을 수 없다. ”

p193 “ 사상과 사회적 배경 따위는 무시해버리고 신입생이 ‘햄릿‘과 ’리어왕‘의 시구에 전율을 느끼고 취하도록, 머리가 아니라 등골로 읽도록 훈련시켜야 해 ”

p194 “ 학생이 ‘단순하다’ ‘진실하다’라는 표현을 칭찬의 의미로 사용하면 점수를 파국적으로 깎아버리곤 하지. ”

p201 “ 프루스트의 그 다듬어지지 않은 걸작은 거대하고 병적인 동화이고…. 반복되며 참을 수 없이 길게 늘어지는 기계적인 도스토옙스키식 언쟁과 톨스토이적 뉘앙스를 띤 속물근성. 경탄할 만한 바다 경치. 감상저긴 가로숫길, 아니, 말 좀 끊지 마세요. ”

p204 “ 잠깐 동안 그것은 그녀가 불러주는 알파벳에 응답했는데, 올바른 글자가 나올 때가지 가만있다가 그 글자가 나오면 승인하듯 살짝 뛰어올랐다. “

p267 ” 희망 없는 모든 시대를 거쳐 가혹한 취급을 받은 모든 인류의 눈물은 수학적으로 동량이며 어쩌면 황토색 가죽 혁대로 린치를 가하는 사람과 신비주의적 반유대주의자 사이에서 이를테면 가장 집착하는 강박관념의 지배를 받을 때 조이는 한 핏줄 같은 유사성을 찾아보는 일도 그리 큰 오류는 아닐 것이다. “

p299 ” 음울한 러시아인들은 정탐했다. - 이 음울함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인종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그저 정체된 국가주의와 변방 특유의 열등감이 외부로 드러난 징후에 불과하다. “

p351 ” 962행 도와주시오. 윌! 창백한 불꽃 - 다른 말로 바꾸면, 이 구절은 명백히 이런 뜻이다. 표제로 쓸 만한 걸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좀 찾아보겠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창백한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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