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있을 법한 모든 것

by 기시군 2023. 8. 5.

✔️
#있을법한모든것 #구병모 #문학동네


전작 #상아의문으로 에서 고생하셨던 팬분들 다시 모이셔도 되겠다. ☺️ 사유와 이미지에만 집중하던 작가님이 마음을 여시고 자신의 장점인 멋진서사들로 가득한 단편집을 냈다. 물론 100%양보한것은 아니어서, 본인이 좋아하는 깊은 '사유'의 결과물도 함께 실려있다. 뭐 상관없다. 이렇게 읽다보면 그쪽 계열 작품들도 익숙해 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인상적인 몇편의 개요만 훑는다.

* 니니코라치우푼타 : 근 미래 인구가 줄어들어 중위연령이 61세인 시대다. 특수분장을 업을 삼는 주인공에겐 치매의 어머니가 계시다. 언제부터 자신이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는 외계인 '니니코라치우푼타'를 보고 싶다고 채근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니니코라치우푼타'의 분장을 만들고, 연기를 할 연기자까지 섭외했다.

*노커 : 길가다 누군가 내 뒤통수라도 때리고 도망가면, 맞은 사람은 언어를 잊어버린다. 별일 아닌 사건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점점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말을 잊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있을 법한 모든것 : 작가인 나에게 로멘스소설 의뢰가 들어왔다. 주특기는 아니어서 고민중인데 꿈속에서 뭔가 그럴듯한 상황이 그려졌다. 비대면시대의 메모지를 통한 사랑이야기. 호텔에 작기투숙하는 남자와 그 방을 청소해주는 여자와의 로멘스. 작가는 여려가지 스토리텔링 사이에서 고민한다.

*Q의 진혼 : 이미지와 사유의 결과물, 목적지에 닿지못한 문자메세지 '1'는 세상을 떠돌며 '떨림과 울림'을 표현한다. 이야기에 대한 관심보다 '사유'의 집중하는 요즘 작가의 관심의 결과물이다. 양자역학적 접근이랄까. 상아의문으로가 다시 떠올랐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강하게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끄는 힘에 요즘 세상에서 들썩이는 소재들(노령화,AI,디스토피아,SNS 등등)을 가져다 잘 '직조'해냈다. 작가의 이야기 가운데는 늘 '소통'이 존재한다. 다른 이름과 다른 사연들을 달고 펼쳐지긴 하지만, 그녀는 '소통'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한다. 언어로 대변되는 소통의 도구중 하나인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주목을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이야기, 즉 '서사'의 힘을 계속 믿고 밀고 나가기보다는 생각과 사유, 그 흔적의 이미지들에 대한 유혹이 강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작가는 작가의 길을 갈것이고 우리는 동의의 수준에 따라 그의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사실 작가의 생각처럼, 어떻게 해도 전달되지 않는 '의미들' 사이에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면, '좀 더 사유하라'는 자기다짐이 의미있어 보이기도 한다. 다음은 또 어떻게 변화된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날지 기대되는 작가가 구병모작가다.

p37 “ 질리지 않고 감정적 착시 상태를 잘도 유지하는 나 자신의 심장이야말로, 도저한 환멸의 화살이 꽂힐 과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p47 “ 중위 연령61세의 시대, 공연도 보러 다니고 할 만한 내 또래 사람들이 상시 노동에 붙들려 있어서 즐길 여유가 없었다. ”

p84 “ 그 미지의 얼굴을 가진 존재들은 어느새 노커Knocker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상대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성대의 혀 근육을 마비시키는 초능력의 소유자라 치면, 굳이 그런 일을 하여 민심을 소란스럽게 할 이유가 있나. ”

p94 “ 단지 말이 통하지 않을 뿐인데, 생화학무기나 핵이나 좀비가 없이도 세상은 영화에서나 보던 종말 상황과 비슷하다. ”

p124 “ 단지 타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입장과 이미지에 대해 마음대로 재단에 가까운 상상을 했던 자신의 편견과 무례, 무관심을  깨달은 뒤 원래는 그녀에게 작업을 걸 의도였음을 고백한다. ”

p162 “ 우리는 애새끼를 치고 노부모를 봉양하고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는데 너는 왜 그 노동에서 이탈하여 한가로이 개새끼나 돌보고 있느냐. ”

p188 “ 내가 당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고, 그 어떤 문장도 쓰이지 않음만 못하다면, 그 어떤 단어도 말해지지 않음만 못하다면, 나를 당신의 낱자로 받아들여 당신이 보유한 모음과 받침 안에서 일순의 감각이나마 벼리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전해졌어야 할 그 메시지. ”

p193 “ 무의미야말로 이 세상의 유일한 의미임을 증명하는 파동이다. 산산조각난 신의 찻잔이 우주에 흩어져 별이 된다. 1/들은 당신이 기다리는, 동시에 누구도 원치않을 0의 총합이다. “

p264 [작가의 말] ” 그 어느 때보다도 이야기는 만연하고, 창궐하고, 범람하고, 난무한다. 그것을 이야기의 개화라고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이야기하는 것이 더이상 설 땅을 잃어버린 시대의 끝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폴 리쾨르)’

#있을법한이야기_기시리뷰 #한국소설 #단편집 #SF소설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독서노트 #독서기록 #책리뷰 #리뷰 #기시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