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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by 기시군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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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희미한빛으로도 #최은영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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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작자 그런사람이 작가이며, 최은영작가는 그런 작가 중 에서도 좀더 섬세하며 민감한 감각으로 사람들의 안과 밖의 결들을 ‘글’로 표현 할 수 있는 좋은 작가다. 5년만에 나온 단편집. 반가웠고 아껴가며 읽었다. 선명한 한편 한편이 마음에 남는걸 느끼며, 작가가 힘들게 건져올린 문장들에 북마크를 했다. 근래 본 책 중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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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7편 모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직장을 다니다 늦게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나는 '영어로 에세이'를 쓰는 강좌를 맡은 강사 그녀를 만난다. 나는 그녀를 통해 글의 황홀함과 고통을 같이 느낀다.

글쓰기는 내가 느끼는 경험과 나의 기본적인 태도의 발화다. 안전한 글쓰기의 장점은 그 반대편의 반대를 불러올 수 도 있다. 화해와 이해는 더 쌓아올려진 경험을 통해 뒤늦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몫
대학, 교지편집실에 글을 쓰는 세사람. 뭔가 자신감 없는 나, 성실하고 진지한 리더 선배 정윤, 사람을 끌어드리는 힘을 가진 글을 쓰는 멋쟁이 희윤. 같은 곳에 있다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구심력의 중심은 같을지 몰라도 각자 입장의 원심력으로 휘둘러 벌어지는 관계는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각자의 타협안을 가지고 그 때 우리가 고민했던 것만이라도 잊고 살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 우리들의 몫이다.

*일 년
정규직 지수, 다른 꿈을 꾸다 포기하고 인턴으로 아슬아슬한 회사생활을 견디는 동갑내기 다희, 그들이 잠시 함께 한 일년. 최소한 한사람 이상에게 무언가 변화의 힘을 준 일년.

나의 마음과 타자의 마음사이에는 언제나 벽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벽을 두고 마음사이를 잇고 있다. 상황과 처지가 다른 '좋은'사람들 간의 '대화'를 고민하게 되는 한편의 단편.

*답신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매, 악착같이 서로를 챙기던 어린 그녀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둘의 선택은 다르다. 언니는 '나쁜'사람들에게 희생당하는 것으로 생활을 보장받으려 하고, 동생은 지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힘을 키운다. 하지만 '나쁜'사람들은 그녀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많은 자리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덕담을 전한다. 타인의 승진,생일 을 축하고 생일을 축하한다그런데 우리가 하는 축하의 몇퍼센트가 진실일까.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를 하는 행위와 다를바 없는 축하가 넘친다. '답신'의  마지막 문장. ‘오늘은 5월의 따뜻하고 맑은 날, 너의 생일이야. 너의 스물세번째 생일을 축하해p179’라는 문장은 앞부분을 읽은 이로써는 마음 떨리는 축하였다.

*파종
이혼한 난 어린 딸 '소리'와 아픈 오빠네 집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작가로 성공해야하는 나는 바빴으며 다행히 소리는 삼촌을 무척 잘 따르며, 같이 텃밭꾸미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런 삼촌이 죽었다.

죽어가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한다. ‘너 힘든 거, 나 줘….. 가지고 갈게p203’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예전에 들었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너의 죽음’이라는 말. 살아남/아/져/ 버린 나를 위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너’가 될 수 있을까.

*이모에게
맛벌이에 정신없는 부모는 딸 희진이 양육을 위해 이모와 같이 살기로 했다. 츤데레 같은 이모에게 희진은 금새 이모를 좋아하게 된다. 영원히 같지 살 줄 알았던 희진에게 이모의 분가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어떻게 변해가는 가는 우리의 몫이다. ‘이모에게’를 통해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싫어하는 것이 늘어가만 가고, 자가 상처에 매몰되어 나만 세상에서 젤 힘든사람이 되어가는, 자신도 모르게 편협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서워진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식모로 팔려갔던 어린시절의 기남, 성공한 둘째 딸의 초청으로 홍콩여행을 떠난다. 도착한 직후 부터 일이 꼬인다. 캐리어를 하나 분실하고, 딸 우경의 눈치를 보게된다. 여행은 홍콩과 과거를 왔다갔다한다. 다행히 손자 마이클은 기남을 금새 따라 아이를 보는 기쁨이 크다.

세월은 지나고 우리는 늙는다. 지켜오던 무언가도 변하고, 스스로의 경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작가는 그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든 ‘작고 연약한 순간이 아직은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p320’을 믿는것,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말한다. 비록 그 순간이 찰라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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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겐 희미한 빛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깊은 진실과 사실들이 있다. 그 빛을 더듬어 최은영작가는 우리 사람들 간의 관계와 그들이 만들어내어 우당탕 거리는 소음을 잡아 낸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 인간에 대한 공감과 관심으로 관계과 파열음의 '소리'를 통해 소설이 문학다운 일을 할 수 있게 끌고 간다.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작가의 글은 타인의 상처에 한 공감에서 시작한다. 단지 '그랬구나'의 읖조림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것. 작가의 소설에 감동받는 사람들이 많은 원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 록 더 좋아지는 작가가 있다. 작가는 아주 겸손한 문장으로 큰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맙게 읽었다.

p11 “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

p31 “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p51 “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

p59 “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이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p105 “ 현재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자랑하는 말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생각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자기 특권을 과시하는 사람들. “

p197 “ 부모가 함부로 뱉는 말이 어린 자식에게 얼마나 파괴적으로 다가왔는지 아버지는 알았을까? 폭언으로 물들던 유년의 밤을 그녀는 떠올렸다. “

p255 “ 결국 비슷한 주름을 얼굴에 새기면서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만 늘려가는 인간이 될까봐, 자기 상처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상처는 무시하고 별것도 아니라고 얕잡아 보는 편협하고 어두운 인간이 될까봐 겁이 났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p264 “ 이모는 뜬금없이 내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

p300 “ 어린 시절, 기남의 가장 달콤한 몽상은 고통 없이 단번에 죽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

p309 “ 사람들은…..자신들이 준 작은 마음이나 호의까지도 모두 두 배 세 배로 돌려받길 원했다. 그래서 기남은 사람으로 사는 일이 원래 그런것인 줄로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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