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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프롬토니오

by 기시군 202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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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토니오 #정용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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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이며 감성어린 문장들.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타인보다 더 상처입으며, 아무는 시간은 더 걸리는 사람들, 깊게 사랑하고 오래 사랑하는 사람들, 서로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언제나 넘처, 서로 미안해 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책 '프롬토니오'는 그런 사람들의 세계다. 현실을 걸치고 있지만 '인간' 안 쪽의 세계에 더 강한 악력으로 손을 쥐고 있는 소년의 마음이 그려졌다. 이쁜 고래그림의 표지 만큼 마음이 이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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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앞, 어느 섬. 해변가로 올라온 고래떼들이 죽어간다. 바다에서 실종된 연인을 찾아 헤메이던 화산학자 '시몬'은 고래 입에서 튀어나온 이상한 생명체를 집으로 데려온다. 매끄러운 피부의 해양동물처럼 보였던 그것은 점점 사람의 형체를 띄기 시작하고, 자신의 이름이 '토니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까지 변했다. 동료 테쓰로도 토니오 정체에 경악을 하고, 심지 토니오가 바닷속 깊숙이 몇시간을 잠수해서 실종된 시몬의 연인 앨런을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자 기겁을 한다. 테쓰로와 엘런 밖에 모르는 비밀을 토니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제 토니오의 이야기에 따라 작은 모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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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투명한 문장과 묘사,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소설, 기존의 정용준 소설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는 다소 다른 파스텔톤의 빛이 느껴진다. 존재하다고 믿는 편이 '우리'에게 더 '좋은일'이라면 그것도 좋다는 혼잣말이 들리는 듯 하다. 많은 취재와 깊은 고민이 묻어난다. 뻔해지지 않으려 했고, 일부는 성공했으나 일부는 미흡하다. 삶과 죽음과 기억과 상실에 대한 동화는 완벽하게 쓰여지기 힘들다. 후반부 인물의 반전에 놀라기는 했으나, 그것 만으로는 약간은 살짝 떠 있는 소설을 내려 누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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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은 개성적이며 확실한 줄기로 스토리들은 잘 이어져 완성도 있는 플롯을 보여준다. 환상모험담이라고 할까, 서스펜스까지 느껴지는 장면들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 만듬새를 흠잡기는 어렵다. 다만, 시공간을 가로 지르고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환타지성 스토리에 잘 몰입하지 못하는 내 성향 탓이 크다. 상실과 사랑, 헤어짐에 대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 너무 깊이 들어가다보니, '마음의 증폭'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나에겐 조금은 과했다. 존재할 수 없는 공간 '유토'는 하루키 초기 작품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실의 반대되는 공간 세계의 끝 처럼 은유된다. 그래도 과하게 출렁이던 시적 울림은 마지막, 손바닥 위로 따스하게 내려 앉으며 마무리되기에 나쁘지 않은 뒷맛으로 남는다. 여전히 작가 정용준에 대한 나의 팬심은 살아넘친다.

내게 작가 정용준은 #가나 #우리는혈육이아니냐 등 거친 세상에 억척같이 따쓰함을 찾아다니는 기록의 작성자로서 더 매력이 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비관주의, 허무주의적인 성향 때문이지 싶다. 아니면 순수했던 어릴 때 내 마음이 세월에 다 갉아먹혀 늙어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돌가아지 못할 시절을 읽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아픈일이다. 조금 더 나빠진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어쩌겠는가. 이 모양으로도 살아내야할 하루하루다. 얼굴의 주름보다 더 슬픈건 마음의 주름이다.

p276 “우리들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뭘까? 죽는 순간의 통증? 더 살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 떠나는 자도 남겨진 자도 같은 이유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남겨진 자들은 반대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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