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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기시군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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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그불확실한벽 #무라카미하루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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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작가는 평생 하고 싶은 한두가지의 이야기를 계속 변주해 간다는 말에 긍정하게 된다. 6년만에 읽게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많이 익숙한 인물과 상황, 아이템들이 살짝 옷만 바꿔입고 재출현한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자기표절이겠고, 긍정적으로 본다면 가장 맛난 요리들만 골라 내어놓은 특급요리사의 스페셜한 만찬이다. 판단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며, 난 서사보다 마음을 끄는 그의 문장의 매력에 빠져 편하게 그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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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소년은 16세소녀를 만나 사랑을 한다. 소녀는 현실의 자신은 그림자이며 진짜 자신은 높은벽으로 둘러쌓인 도시에 살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소년은 끝없이 소녀를 기다리며 세월을 쌓아간다. 독신에, 요리를 잘하며 재즈를 즐기는 사십대중반의 '어른'(매우 익숙한 하루키 소설의 주임공 타입 😁)이 되어 버린 소년은 우연히 그 벽으로 둘러쌓인 도시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버리고, 책 대신 '사람들의 꿈'이 달걀모양으로 모여있는 도서관에 들어가 그녀를 만나게 되며, 그는 '꿈을 읽는 이'라는 직업을 얻는다.

우여곡절 끝에 오래 머무르던 도시에서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느 시골 작은 도서관 관장직을 얻게된다. 전임 관장인 '고야스'씨의 도움으로 도서관일에 익숙해지며, 작은 마을에도 조금씩 친숙해져 가는데, 고야스에겐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 또한 그 마을에서 커피숖을 운영하는 매력적인 삼십대 중반의 여주인을 만나기도 하고,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소년과도 이상한 관계가 시작된다. 마을에서의 이상하고 신비로운 사건과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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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다는 표현이 적확할진 모르겠다. 사라진 16세 소녀를 사랑하던 17세 소년의 마음은 그녀를 기다리면서 '손상'될 수 밖에 없다. 이걸 '성장'이라 부를지 '상실'이라 부를지는 바라 보는 관점에 의해 달라진다. #노르웨이의숲 의 '나오코'를 바라던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통해 성장하지만, 그녀가 없는 와타나베가 이 책의 주인공 '나'일지 모르겠다.

소설가 하루키에 머릿속에 평생 담겨져있는 세상이 있다. 이 책에서는 불확실한 벽으로 둘러쌓여진 도시이며, 현실과는 분리된, 다른 책에선 '세계의 끝'이라 묘사된 곳이며 이 책에선 ‘관념의 가장자리’라 불리운다. 현실을 벗어난 그곳에서 ‘내’가하는 일은 타인의 꿈을 읽은 일이며, 이 꿈들은 '사람들 마음의 잔향p177' 이다. 소설가의 일은 그 잔향의 의미를 새기는 일이며 그 궁극은 끝나지 않은 그 일을 수행하는 것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인간에겐 인생의 '절정'이 있고 그것은 모든것을 쏟아부어도 아쉽지 않을 사랑에 빠진 그 순간, 또는 다른 '무엇'에 자기 전체를 밀어넣을 결심이 써는 순간이라 할때, 하루키는 인간에게 남은 인생의 절차들은 그 순간을 다시 찾아 헤메이는 과정이라 보고 있다. 다만 그는 고집하지 않는다. 수많은 접촉과 분리, 경계선에서의 고민, 작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들간의 관계의 생성과 소멸을 보여며 소설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구조에 의심을 던지게 독자들을 유도하고 있다. 소설에서 가끔 드러나는 현기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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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것p280'를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루키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힘p419'을 찾고 의지한다. #기사단장죽이기 의 맨시키와 성격은 다르지만 이 책의 ‘고야스'는 동전의 양면같이 느껴진다. 부드러운척 하지만 거칠게 개입하는 그들은 순수의 세계는 가장 편안한 세계라 게으름피우는 우리들 마음에 시비를 거는 인물들이다. 내 안의 욕심과 자꾸 관계안으로 즐어오는 세계와 사람들. 그 톱니바퀴의 파열음이 하루키 문학의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그의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 사실 특별한 결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무엇을 향해 가는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들의 만찬을 멋지게 벌일 수 있는 일류요리사가 하루키이다. 우리는 그가 차려놓은 익숙한 맛난 요리들 속에서 나의 입맛에 맞는 '삶의 그림자'라는 요리를 골라 먹으면 된다. 취향 때문에 다시 먹어도 맛났던 나같은 독자도 많을 듯 하고, 너무 반복적이다며 질려하는 독자도 적지 않을 듯 하다. 사실 그것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다. 31세에 쓰여진 중편을 3년에 걸쳐 장편으로 다시 써낸 71세의 작가 노력은 이미 판매부수로 인정을 받고 있다. 노년의 하루키에게 혁신을 바랄 순 없다. 그가 남은 여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시 조합되어 나올 얼마 안남은 작품들의 풍미를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

p28 " 너는 그런 사정을 띄엄띄엄 조각내어 들려준다. 오래된 코트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해진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놓는 것처럼. "

p53 " 도서관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없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본래의 의미만을 지니고, 모든 것이 각자 고유의 장소에 , 혹은 눈길이 닿는 그 주변에 흔들림 없이 머물러 있다. "

p102 " 거기 있던 게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세계의 관경이었다는 걸세.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지, 내 안에도 있고, 자네 안에도 있어. 그럼에도 역시,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광경이라네. 그렇기에 우리는 태반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내는 셈이고. "

p153 " 내가 보기엔 저쪽이야말로 진짜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고생하며 나이들고 쇠약해져 죽어가요. 물론 썩 재미있는 일은 아니죠. 하지만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그 과정을 이어가는 게 순리입니다. "

p177 " 오래된 꿈이란,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닐까요. "

p192 " (다른여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내 안에는 늘 일정한 보류가 있다. 너만을 위한 공간을 마음속 어딘가에 보존해둬야 한다. "

p247 " 나는 내 그림자가 아무래도 신경쓰여. 특히 최근 들어서 자기 그림자에 대해 인간으로서 져야 할 책임 같은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어. "

p280 " 나는 그 슬픔을 무척 잘 기억했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또한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지도 않는 종류의 깊은 슬픔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남기고 가는 슬픔이다. "

p358 " '서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

p447 " 그 소녀만큼 누군가를 열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으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수눗한 심정을 품은 적은요. "

p451 " (도서관) 이곳은 다름 아닌, 잃어버린 마음을 받아들이는 특벽한 장소여야 합니다. "

p579 " 나는 그 커피숖 여자를 사랑하진 않는다. 자연스러운 호감을 느끼지만 사랑과는 다르다. 사랑을 하기 위한 내 심신의 기능은-상대에게 나 자신을 고스란히 내주고 싶다는 종합적 충동 같은 것은- 아주 오래전에 다 타버린 듯하다. "

p685 " (그 도시는) 그렇다. 그건 꿈이 아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현실의 가장자리 끝에 존재하는 관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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