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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by 기시군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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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않을수없는밤이니까요 #정지아 #마이디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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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다 놓고, 천천히 읽었다. 화요 마시는 날만 몇 편씩 읽은것 같다. 피드는 한 참 후에나 올릴 것 같았는데, 어느새 다 읽고 말았다. 생각보다 내가 술을 너무 자주 마시나 보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작가의 술이야기는 의외의 공감과 예상대로의 넘사벽 술이야기로 도란도란 재미있다. 의외였던 것은 왠지 막걸리나 소주 일것 같은 예상을 깨고, 작가는 조니워커블루를 최애한다는 점이었다. 빨치산의 딸과 위스키는 언벨런스한 느낌을 주지만 그 살짝 어긋남이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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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34편의 술에세이가 모여있다.

첫 술을 알려준 사회주의자 아버지 이야기, 허세가득했던 청춘을 같이 지나쳐온 술이야기, 인심좋은 막걸리집 주인장의 호의로 오병이어의 기적의 술파티를 벌였던 에피소드, 대기업 회장님과 얽힌 비싼 술(수억원짜리란다) 경험담, 아련하게 스쳐갔던 청춘의 핑크빛 사랑이야기까지 다채롭고 다양한 술과 인생의 수다들이다. 천천히 3박4일을 동안 술을 마실수 있는 법을 알려준 작가의 선생님들 이야기나 그녀가 왜 '존나 빠른 달팽이 작가'가 되었는지도 재미있게 읽었다.  4부 첫 편 제목인 ' 관계는 폐쇄적으로, 위스키는 공격적으로!' 가 마음에 들었다. 위스키자리에 '화요'만 넣으면 내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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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고졸 컴플렉스에 주늑든 후배에게 시바스리갈과 애정이 담긴 막말을 던지며 그녀의 상처를 주물럭거리는 능력자인 작가.  말 수 적던 상대는 어느틈에 작가의 술과 말에 녹아내려 자기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으며 삶의 상채기를 스스로 메워간다. 작가의 말대로 아름다워 보이는 밤이야기였고, 이런 멋진 누나 한명있었다면 낯가리는 나라도 그녀의 밤샘 술자리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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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별것 아닌 일로 서글퍼 지는 경우가 있다. 작가는 '누추한 내 집의 담 사이에 당도한 햇살 p96' 이 서글퍼 지기도 한다 말한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쨍한 하늘과 그림자가 갑자기 마음에 들어와 갑자기 서글퍼졌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존재한다는 것의 서글픔, 그 큰 위로가 작가나 나에겐 술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작가는 술과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에 위로를 얻었고, 난 술 자체의 침잠력에 집착하는 모지리라는 점이다.

술을 못드시는 분들께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술이 먹고 싶은 핑계일 뿐이라 여기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술꾼들은 다르다. 모든 술은 의미가 있고, 까닭이 있으며, 그 시작과 끝은 모두 다른 형태로 술꾼을 위로한다. 일상에서는 너무 멀게 서있는 타자와 한걸음이라도 가까워지게 만들어 주는 마술을 부리며, 혼술의 시간에도 상황과 상태에 따라 다른 시간들을 만들어 낸다. 맞다. 난 술 예찬론자다.

덧 ,
숙취가 있다. 가끔 아프다. 오늘이 그렇다. 속도 컨디션도 늙어가는 몸을 괴롭힌다. 반갑진 않지만 그것 때문에 애정하는 술을 피할 순 없다. 술을 통한 침잠은 나와 세계 사이에서 작은 이불 역할을 한다. 상채기든 일상이든 모두 잊고 무존재의 행복한 시간을 불러온다. 말로 무언가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술을 안으로 담고 삭혀 푸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아까 말한 그모지리인 나다. 이렇게 만들어져서 이번 생엔 어쩔 수 없다. 😔

p23 " 머시매들은 밤새 놀아도 되고 가시내들은 밤새 놀먼 안 된당가? 고거이 남녀평등이여? 자네는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아니그마! "

p40 " 어둠 속에서 옆방의 청춘은 숨죽여 사랑을 나구고, 우리는 소리 죽여 술을 나누었다. 서글픈 노래는 장병의 짧은 비명과 함께 허무하게 빨리도 끝났다.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뜻밖에 우리의 청춘도 저토록 짧을지 모르겠다는. "

p59 " 나에게 마음 두고 있는 존재들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다. "

p126 " 나는 술 역시 순수하고 깔끔한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발렌타인 30년산보다는 반값밖에 안 하는 조니워커 블루를 더 좋아한다. "

p192 " ' 쌤, 난 왜 이러게 이기적이지? 정말 못된 거 같애. ' 기쁘게 답했다. ' 좋다 좋아. 아는 게 어디냐? 것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천지 삐까리에 널렸는데! ' "

p195 " 청춘은 허세다. 그러니까 청춘이지. "

p208 " 그러니까 그냥 우리는, 그날 알코올의 침을 빌려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거나 잠시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경이를 경험했다. "

p262 " 몸 따위, 하찮았다. 정신은 고결한 것, 육체는 하찮은 것, 그래서 육체의 욕망에 굴북하는 모든 행위를 혐오했다. 혐오라니. 몸이 있어 정신이 존재하는 것인데, 젊은 나는 참으로 하찮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하찮게 천대해왔던 불쌍한 나의 몸에게 블루를, 귀하디귀한 블루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

p280 " 하늘이 고우면 고와서, 바람이 스산하면 스산해서, 노골노골 땅이 녹는 초봄에는 마음이 노골노골해서, 비가 한줄금 긋고 지나가면 맘이 괜시리 착잡해서, 마신다. "

p310 "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소설이란 사람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아직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른다. 모른다기보다 어렵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술 없이 말을 시작하고, 술 없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어렵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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