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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초록은 어디에나

by 기시군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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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어디에나 #임선우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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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유령의마음으로 때문에 팬이 되었다. 남다른 상상력, 상쾌한 필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그걸 나름의 색깔로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젊은 작가로 기억한다.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망설임없이 구매했고, 작은 책엔 3편의 단편이 실려있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모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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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의 개요를 보자. 몇편 더 실렸으면 어쨌을까 싶지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컨셉인것 같다. 그래도 #위픽시리즈 보단 볼륨이 크다는 점에 위안을 삼는다. ☺️

*초록 고래가 있는 방
빌라 이층집에 시끄럽다. 유미는 쿵쿵거리는 층간소음에 주인장을 만나면 한마디 해주려 벼르고 있었다. 마침 불이 켜져있는 걸 확인하고 쫓아올라갔다. 초인공에 소리를 쳐도 아무도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시끄럽게 난리를 쳤더니 조용히 문이 열린다. 집안엔 거대한 낙타 한마리가 있다. 낙타가 말을 한다. 자기는 사람이고 가끔 낙타로 변신한단다.

*사려 깊은 밤, 푸른 돌
달랑 선인장 하나만 남기고 남자가 떠나고 나서, 선영은 슬프면 눈물대신에 뱃속에서 돌을 토한다. 문제는 돌을 가까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의 감정을 전하기에 잘 모아 숨겨둘수 밖에 없다. 비오는 어느날 자꾸 죽어가려는 선인장에게 물이나 흠쩍 주려고 화단에 내 놨더니 어떤 여자가 훌쩍 집어가 버렸다. 뭐하나 되는게 없다.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주영이는 같은 건물 헬스장 직원 영하언니와 친하다. 어느날 영하언니가 꽁짜 일본여행을 가자고 하잔다. 금괴밀수를 도와주면 호텔비와 비행기값을 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위험하게 느껴졌지만 주영이에겐 일본에 가고 싶은 사연이 있다. 둘은 일본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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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비내리는 저녁에 바라보는 초록은 지지 않겠다고 단호해 보인다. 한편으론 햇살 가득 밝음을 머금은 초록은 자기 품의 '평화로움'을 지켜보는 이에게 전해주는 여유를 보여준다.

3편의 소설은 쓸쓸하지만 지지않고 초록임을 유지하고 싶은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의 문장처럼 아무이야기 아닌것들을 읽고났는데 '무언가 전달받았다p37'는 느낌을 받는다. 낙타로 변신하는 사람이 나와도, 돌을 토하는 소녀를 만나도 이상하지 않는 세계다. 홀로 있어야 할 것 같은 아파하는 '그들'을 어느새 다가가 조용히 배려하고 교감한다. 낙타가 된 여자는 온 집안에 방음판을 깔아 아랫층을 배려하고, 슬픈 돌을 토하는 소녀는 돌을 함부러 버렸다간 다른사람들에게 슬픔이 퍼질까 두려워 돌을 버리지도 못한다. 소소한 복수의 대상은 어느새 염려와 연민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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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거대담론이 큰 힘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다. 오히려 딴짓하는 공감, 무심한 관심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임선우작가는 시대에 맞는 소설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의 격랑에 매달리기 보다는 무심히 그냥 슬픔의 돌을 토해버린다. 요즘의 청춘과 감수성으로만 가능한 문학적 상상력일듯 싶다. 앞으로 어떤 작품들로 다시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깊어질지 넓어질지, 작가가 정할 몫이지만 어느쪽이든 기대가 된다. 큰 이야기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응원한다.

p37 “ 유미 씨의 글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읽고 나면 무언가 전달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

p44 “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상처로부터 훌쩍 멀어져 있을 때가 있어요. 이것은 유미 씨의 말. 그 말이 정말일까. 정말이라면 유미 씨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

p46 “ 마음이 천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의 마음이 그토록 무수히 찢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낱낱이 다른 천 개의 슬프과 만 개의 슬픔이 생겨났다는 뜻이라고. ”

p83 “ (은행경비로 근무하는) 희조가 도벽을 끊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그 시시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을 회조는 부러워했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언제나끝이 있었으니까. 희조는 때때로, 아니 실은 매일같이 불리지 않는 번호표를 쥐고 은행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고, 퇴근길에는 어김없이 물건을 훔쳤다. ”

p115 “ 영하 언니는 내가 왜 축구를 그만두었는지, 은주가 왜 죽었는지 묻지 않았다. 언니는 늘 그렇듯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점은 내가 영하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영하 언니를 미워하는 이유였다. ”

p127 “ 사람들은 왜 물가에 가면 곁에 있는 이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는 걸까. ”

p145 [해설] “ 소설은 어떻게 쓰는 걸까? 곰곰 생각해보아도 여전히 알 수 없다. 당장 추측해보자면 커피, 걷기, 물가가 반복되는 중에 생긴 틈새로 흘러나온 것들이 모여서 소설이 되는 것일지도, 혹은 커피 한 숟갈, 걷기 한 숟갈, 물가 한 숟갈을 넣고 섞다 보면 마치 연금술처럼 생성되는 것이 소설일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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