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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고통에 관하여

by 기시군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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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관하여 #정보라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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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정보라 작가가 신작 장편을 출간했다.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고통에 관하여'라니 그렇지 않아도 칼날같이 후벼파는 듯한 필체와 서늘하다못해 추워져버리는 서사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쎈 작가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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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부모는 약 한알로 고통을 잠재우는 부작용없는 완벽한 진통제 NSTRA-14를 개발하여 엄청난 성공을 한다. 그 성공의 비밀에는 '경'이 받아야할 '고통'이 있었다. '태'는 고통에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그에게 '고통'을 없애는 제약회사는 악마와도 같았다. 그래서 폭탄드론을 이용해 제약회사에 폭탄테러를 가했다. 덕분에 '경'의 부모는 모두 죽고 어린 '경'이 회사를 이어받게 된다. 진짜 사건들은 사고 12년이 흐른뒤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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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SF스릴러이다.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나는, '고통' 자체에 대한 사유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선명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의 의미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서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고통들의 익숙함은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버린 '이 땅에서의 삶'의 반영으로 읽힌다. 목표 달성을 위하 참아야 하는 '고통'들, 살아남기 위해 인내해야하는 '고통'들, 삶의 의미를 몰라 방황하는 인간들의 내면에 깔려있는 '고통'들 뿐 아니라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고통까지, 서사와 묘사 모두 처연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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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절망하고 절망으로 인해 마모p126 '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고통에 의미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자와 고통으로라도 의미를 찾자는 자들의 삶을 내걸은 싸움이야기가 삶의 두려움으로 가득한 한국사회에 대한 은유로 그려지고 있다. 호러나 환상문학에 강점이 있던 작가의 새로운 시도인 '스릴러'장르의 도전인데, 스릴러 자체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크게 어필할 수 없을 듯 하다. 작가의 은유에 공명할 수 있을지는 독자들에겐 꽤 묵직하고 의미 소설이 될 것이다.

덧,
조금은 아쉬워, 소설에 대한 직접적인 작가의 변을 더하고 싶어졌다. 고통 뒤에 숨어있는 공포의 정체는 언제보아도 끔찍하고 서늘하다.

" 언제나 쫓기는 삶의 두려움. 폐지 줍는 노인을 돌보는 사회안전망이 없고 한번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이니, 백세 시대에 나는 죽지도 않는 질긴 목숨을 저주하며 빈곤 속에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기 위해서 잠을 못 자기도 하고 밥을 못 먹기도 하면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하여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 작가의 말 "

p25 “ 국제통증학회의 정의에 따르면 통증은 ‘조직 손상이 있거나 있었다고 생각되는 시건에 연관되어 나타나는 감각적 또는 정서적 불유쾌한 경험’으로 정의된다. ”

p29 “ 교단은 포괄적인 관점에서 고통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그들은 데카르트를 읽고 고통이 주는 통증신호가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영혼이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 주목했고, 고통이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라 결론지었다. ”

p63 “ 네가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몸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야. 네 몸이 고통의 근원이자 쾌락의 근원이고, 모든 인지와 정서와 감각의 근원이야. ”

p128 “ 고통은 욱을 더욱 깊이 고립시켰다. 질병과 싸우고 있을 때 욱에게는 통증을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하여 전달할 언어가 없었다. ”

p195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요. 뭘 크게 믿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닥치는 상황들에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의미는 그 뒤에 찾는 거죠. 절대적인 믿음 같은 게 없어도 살아갈 수 있어요. ”

p290 “ 물리적으로 감각하는 모든 정보를 신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지 못할때 마음은 그것을 고통이라 정의했다. 그러므로 기쁨도, 환희도, 초월도, 아마 구원조차도,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모두 고통이었다. ”

p301 “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

p315 “ 자신의 삶에 죽음만이 가득한 건 아니라고, 자신의 삶을 각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믿음 - 삶에 대한 믿음, 고통에 대한 믿음, 의미에 대한 믿음이라고,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고통이며 자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게서 그 고통의 의미를 찾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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