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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A가X에게

by 기시군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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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X에게 #존버거 #From_A_to_X #열화당 #jonhb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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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거의 소설은 처음이다. #다른방식으로보기 라는 미술교양서는 유용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난 그저 미술전문가로만 생각했다. 띄엄띄엄 검색 중에 이 작가의 소설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맑시스트였다는 말도 자극을 주었다. 느낌있는 표지부터, 서간문학이라 홍보된 내용을 보고 작가의 첫소설로 이 책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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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팔레스타인인지 이집트인지 알제리인지 알 수 없다. 중동의 독재정부와 싸우는 테러리스트 사비에르는 사랑하는 연인 아이다를 두고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이 소설은 감옥 밖에서 약사일을 하며 주변사람들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다의 편지를 엮은 책이다. 사비에르는 편지지 뒷장에 단발적으로 이야기와 메모를 적는다. 이관된 감옥안에서 발견된 편지는 모두 사비에르가 읽었지만, 아이다가 붙히지 못한 편지들도 책에 포함된다. 탱크에 둘러쌓여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이야기 등 사비에르가 읽으면 괴로워할 이야기는 편지로 전해지지 못하고 책에만 담긴다. 전장과 테러의 한복판에서 연인의 절절한 사랑과 아이다와 함께하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따뜻하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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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거 자신에 말에 의하면 화려하고 당당한 정문도, 쉽게 스며들수 있는 옆문도 아닌, 시끌벅쩍한 뒷문으로 들어온 소설이라고 한다. 시장바닥같은 곳의 소음에 관찰자는 귀를 막고 지나가기 바쁘다. 소설가는 그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 서로에게 말을 건내는 것이 문학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이미 존버거는 멋진 소설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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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노년에 쓴 작품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적인 이야기안에 애처로운 로맨틱을 자연스럽게담을 수 있었다니 그것도 큰 능력이다. 사실 난 사랑소설엔 큰 매력을 못느낀다. 그런데 이 책은 왜 이렇게 다를까. 갇힌 연인을 추억하며 애잔한 일상을 담담히 담아내는 그들에서 물씬 느껴지는 낭만과 사랑이 주는 잔잔한 감동이 재미있으면서도 당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편지 사이사이, 사비에르의 세계와 자본주의, 권력의 횡포에 대한 서늘한 메모가 차디찬 현실을 반영해 내며 기묘한 균형을 이루어 낸다.

14살 아이가 통금시간인 밤에 밖에 나와있다고 기관총을 맞는 시대를 그린 소설. 읽다보니 지금 이스라엘 가자지구 안의 아랍 민간인들이 떠올랐다. 테러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 민간인 200만명이 작은 감옥안에 갇혀있다. 앞으로 벌어질 학살의 희생자는 책 안에 등장하는 많은 보통사람들일 것이다. 사랑하며 투닥거리고 자식을 챙기고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 200만명이 그 곳에 있다.

소설은 숫자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사람을 다룬다.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사람을 위한 예술이 난 좋다.

p15 “ 우주는 기계가 아니라 뇌와 비슷하다. 삶은 지금 말해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

p27 “ 매일 밤 당신을 조각조각 맞춰 봅니다 - 아주 작은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

p37 “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 ”

p65 “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

p66 “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 중에 당신은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말해 주세요. 우리 함께 이 긴 밤이 지나도록 그것을 즐길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해 주세요. ”

p92 “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죠. ”

p95 “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

p97 “ 우리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그것을 지켜 준다. ”

p105 “ 자발적 용기는 젊은 시절에 시작되죠. 나이가 들며 생기는 건 인내예요. 세월이 가져다주는 잔인한 선물이죠. ”

p139 “ 지옥은 돈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고, 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 말을 잘 듣고 충직하게 지내면, 다른 삶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그들도 지금 이 세상에서 부를 통해 살 수 있는 것과 그 이상의 것까지 즐길 수 있다는 양속을 통해서 말이다…… 지옥은 축적된 부를 일종의 성스러운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

p189 “ 이레네, 잘 자요. 꿈속에서 당신을 가질 테니… ”

p195 “ 다음 탱크가 다가오며 우리가 입고 있던 치미가 바람에 출렁였어요…..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였죠. 그리고 우리 할머니들의 쉰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기 위해 왔다! 우리의 무기라곤 이제 쓸모없게 되어 버린 자궁밖에 없었죠. ”

p222 “ 잠은 최초의 집이에요. 지붕도 없고 벽이나 침대도 없는 집. 그런 것들은 뒤에, 잠에 영감을 받아 등장하는 거예요. 오늘 밤, 당신을 그 맨 처음 집으로, 내 사랑, 안내할게요. 괴물 같은 문 밑으로 그 잠을 밀어 넣을게요. 그 안에 내가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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