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물질적인밤 #이장욱 #문학과지성사 #에크리
📝
최애하는 작가 이장욱이 신간을 내었다. 어떤 책일까. 저자의 설명을 빌리자. 일기보다는 공적이며 에세이라기엔 파편적이며 메모라기엔 길고 문학같은 부분도 있지만 평론같기도 하며 많은 부분은 시와 소설에 대한 메타적인 글쓰기로 채워진 책. 작가이자 평론가이며 시인인 이장욱의 삶과 정치에 대한 소견, 단상으로 가득한 작은 한권의 책이다.
📝
4개의 파트로 나뉜다.
첫째, 그해 겨울, 일기
소련이란 이름을 버린지 얼마되지 않은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젊은 이장욱은 추위와 이른 밤 사이에서 하얀입김 가득 느껴지는 일기를 쓴다.
둘째, 에크리, 또는 메모들
에크리는 '쓰다, 쓴 것'이라는 뜻이다. 짧지만 많은 쓴것들을 모았다. 소설쓰기에 대해서, 시쓰기에 대해서, 아름다음에 대해서, 사유와 침묵에 대해서, 그리고 자유, 정치, 삶 모든것에 대해서.
셋째, 에크리, 또는 장소들
움직인다. 그곳에 대해서 쓴다. 그 중 한곳, 작가에게 동물원은 남다른 곳이다. 광주의 어느 동물원에서 만난 우아한 기린을 쳐다보며 그는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을 상상했다. 뒤이어 정치적인 이유로 또 다른 유태인 학살이 일어났던 동유럽의 어느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금각사를 둘러싼 마초&동성애자 미시마유키오 대한 상념을 담았다.
넷째, 다시 겨울, 일기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 다시 추운 동유럽으로 향했다. 작가는 지금의 사유를 정리한다.
📝
소설이나 시가 아닌,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담은 책은 처음 만났다. 반가웠다. 사적 글쓰기의 분위기 덕분에 짧고 함축적인 묘사가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유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의 생각 안에 오래 잠겨 농익은 간결한 문장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삶을 대자적으로 바라보는 힘. '삶이란 아마도 죽음이 우리를 체험하는 과정p24' 일지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선명하게 남는다. 유한한 삶속에서 무용한 허구가 어떤 유용함을 만들어내는지, 시와 소설의 정체에 대한 깊은 성찰은 매혹적일 수 밖에 없다.
📝
동유럽의 겨울, 그곳에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실때 만이 기분이 나아졌다는 작가. 그는 오랜 세월, ’삶‘의 바로 옆에 ’죽음‘을 둘 수 있었기에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쉽지 않은 일이다. 메멘토모리, 그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사유의 배경일 것이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문학의 정체, 모든 문학은 정치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은 문학의 힘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내가 왜 이 작가에게 매혹되는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작지만 짧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읽고나서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올해 읽은 책 중 베스트에 들어갈 것 같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취향임을 밝혀둔다. 나는 작가에 대해 나름 깊은 팬심을 가진 팬이다. ☺️
p27 “ 언제 어디서든 떠난다는 것은 하나의 죽음과 같네, 라고 그렇다. 떠난다는 것은 하나의 죽음이며 이별과 같다. ”
p35 “ 무슨 생각을 갖고 소설을 시작했는데, 끝나고 보면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세계가 거기 있다….. 소설의 몸, 소설의 육체란 그런 것이라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38 “ ‘옆길로 새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본모습이며 구성 원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인생은 소위 ’내러티브‘와 다르다. 삶은 기승전결의 플롯을 지니지 않는다. ”
p46 (도스토옙스키에게 소설은) “ ‘타자의 말’을 제 안으로 끌어들여 등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그것과 사투를 벌인다는 것. 그리하여 ‘타자의 말’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뒤집힌 이면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 ”
p51 “ 소설가는 오히려 ‘자신이 아닌 존재들’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
p55 “ 소설은 어느 지점에서든 작가의 사유와 생각을 초과하거나 결여함으로써 불일치를 생산한다. 그 불일치의 영역이 삶의 기미이며 리얼리티의 힘이며 소설의 생명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심지어 ‘관념 소설’에서조차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
p60 “ 서사를 창안한다는 것은 자아와 내면 바깥에 외부 세계의 논리를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71 “ 의미의 이면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 의미의 어둠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시안이 되기는 쉽지 않다. ”
p81 “ 상투성은 위대하다. 상투성은 모든 창조적 글쓰기가 소멸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그것이 구현되는 지반이다. ”
p85 “ 대체 불가능한 내적 필연성의 자각. 그럼으로써 시는 ‘하나의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말’에 다가간다. 말하자만 ‘하나의 죽음’에. ”
p92 “ 언어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도구이다. …. 언어는 자체로 대상을 과잉 결정함으로써 작동한다…. 언어는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규정하고 구획하교 변형함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
p101 “ 자유기술과 자유연상은? 그런 글쓰기 방식 역시 이제는 구시대적으로 느껴진다. 20세기적 욕망 또는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랄까. ”
p107 “ ‘정치적 올바름’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의’의 영역에 속한다. ”
p125 “ 현대인은 자본주의라는 유일한 ‘자연’ 속의 동물과 같다. 상품이라는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이 동물의 이름은 ’소비자‘이다. ”
p132 “ 문학에서도 계급은 사라진 적이 없다. 모든 문학은 언제나 계급문학이었다….. 19세기 리얼리즘 문학은 대개 중간계급 식자층의 사회 관찰기였으며 20세기 초의 전위적 문학은 중간계급 청년들의 미적 자의식의 산물이었다. ”
p134 “ 선량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주류 진보주의자를 옹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거짓과 불의에 연류된 약자의 편에 서는 일이다.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 된다. ”
p149 “ 인간의 언어는 온전히 구획되지도 않는다. ”
p174 “ 러시아 소설의 음울한 정신분석은 일본 작가들에게 이르러 수위 ’심경소설‘이나 ’사소설‘의 형태로 축소되었다.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독서노트#독서기록#책리뷰#리뷰#기시리뷰 #에세이 #문지에크리 #영혼의물질적인밤_기시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오웰 디 에센셜 (0) | 2023.11.11 |
---|---|
핏빛 자오선 (0) | 2023.11.09 |
구의 증명 (0) | 2023.11.04 |
바깥일기, 밖의 삶 (0) | 2023.11.02 |
파견자들 (0) | 2023.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