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Life

파견자들

by 기시군 2023. 10. 31.

✔️
#파견자들 #김초엽 #퍼블리온 #예스24

🍄
책표지의 그래픽과 색감이 독특하다. 인류의 적이라 상정된 '범람체'가 차지한 지구의 모습일진데 이렇게 이쁜이유가 뭘까. 작가 김초엽은 또 뭘 상상해 낸걸까. 궁금했다. #방금떠나온세계 가 주었던 재미와 놀라움을 다시 기대하며 책을 들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본격 장편이다.

🍄
우주에서 날아온 균류(더스트)들이 지상을 정복했다. 모든 동식물은 형태와 색깔이 변해가며 재모습을 잃었다. 인간이 이 균들에 오염되면 광증이 발병하여 자아를 잃어버린다. 인류는 어쩔 수 없지 지상을 버리고 지하도시를 건설하여 스며들 수 밖에 없었다. 간혹 파견자라는 특수요원들을 지상에 올려보내 정보수집과 작전을 벌이는 것이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전직 파견자집에 입양된 '태린'은 어린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파견자'가 되어 지상에 나가고 싶다는 꿈만을 꾸며 아카데미에서 훈련과 학습을 한다. 스승 이제프의 도움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태린에게 문제가 생긴다. 어설프게 태린에게 설치되었다 고장난 뇌기능을 보조장치 '뉴로브릭' 이 태린의 몸을 점유하며 지하도시를 위기로 몰고가는 큰 사건을 벌인다.

🍄
곰팡이에 오염된 생물체와 지하로 피신한 인류라는 상황설정이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안에서 갈등하고 관계하는 인물들은 생생하다. 사건은 스피드하게 전개되고 적절한 반전까지 잘 적용되어 중간에 책을 놓기 싫은, 웰메이드 SF드라마가 탄생하였다. 혹시라도 좋은 연출자와 자본을 만나 영상화가 된다면  멋진 풍광과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덕에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
그렇다고 킬링타임용 SF작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가 기존 작품들속에서도 문제제기해 왔던 생명의 범위와 의미를 묻는 직설적인 질문은 여전히 꾸준히 전개된다. 넓게는 생명이라면 좁게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인간이 인간임을 인식하게 해주는 '자아'에 대한 질문들. 어쩌면 우리와 같은 생명의 유지와 자아의 인식이 아닌 다른 형식의 생명체와 자아가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며 재미있게 다가온다.

다만, 책 종반부 마무리 부분은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더 많은 이야기을 담으려 짧게 남은 지면에 너무 많은 내용을 넣어버린건 아닌가 싶다. 조금은 열린결말도 나쁘진 않았을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작가의 장편을 만나서 반가웠고 재미있게 읽었다.

덧,
책을 읽으며 ‘이해'라는 단어를 계속 생각했다. 다른형태의 생명과 자아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 이곳에서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를 학습한다. 함께산다는 것은 '이해'로 시작할 것이다. 흑인은 백인과 다른 인간이라는 몰이해가 인종차별을 만들어 내었다. 이동권을 주장하며 지하철에서 농성을 벌이는 장애인들에 대한 짜증은 그들에 대해 '이해'해 보려는 노력 자체가 없음에서 시작한다. '이해'에 대한 불성실이 나쁜시민, 나쁜사회를 만들어 간다.

p12 “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

p41 “ 파견자는 매료와 증오를 동시에 품고 나아가는 직업입니다. 무언가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해야 해야 합니다. ”

p71 “ 성인 남자 정도의 체격을 가진 시체는 형형색색의 범람체로 뒤덮여 있었다. 보라색, 파란색, 빨간색의 범람 산호들이 빼곡하게 자라나 언뜻 보아서는 의도적으로 조형한 전시물 같았다. ”

p108 “ 인간이 아닌 것이 자아를 가진 것처럼 흉내내기는 생각보다 쉬워. 이전 문명에서도 증명된 사실이고. 하지만 정말로 내가 그걸 자아를 가진 존재로 대하는 건 다른 문제야. 우리에겐 뭐든 의인화하려는 습서이 있지. “

p165 ” 지구상의 어떤 존재도 범람체와는 같지 않지. 그것들은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 그렇지만 증식하고 가지를 뻗고 군집을 이루면, 흡사 지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해. “

p217 ” 편안하게 잠든 듯 보이는 얼굴들이 범람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투명하고 말간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기 있었지만 원래 그들이 가졌어야 할 신체는 온데간데없었다. “

p241 ”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배울 때 말이야. 그리고 결론을 내렸어. 자아란 착각이야. 주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 너희는 단 한 번의 개체 중심적 삶만을 경험해 보아서 그게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우리를 봐. 우리는 개체가 아니야.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하고 세상을 감각하고 의식을 느껴. “

p246 ” 감정이란 개체 단위로 존재하는 생물들이 주관적인 신체 감각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화적 도구이니까. “

p289 ” 제가 슬픈 날에, 쏠은 제 머릿속을 헤엄치며 저의 슬픔들을 걷어가요. 그 슬픔들은 쏠이 끝에서 끝으로 움직일 때마다 가닥가닥 나뉘어 찰랑거리는 베일처럼 변해요. 저는 눈을 감고 그 슬픔사이를 걸어요. 그러면…. 이전만큼 슬픔이 무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

p360 ”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변이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망가져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의 삶으로 진입했다는 것. “

p416 ”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 이들은 스스로를 ‘전이자’로 칭했다.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독서노트#독서기록#책리뷰#리뷰#기시리뷰 #한국소설 #SF소설 #파견자들_기시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의 증명  (0) 2023.11.04
바깥일기, 밖의 삶  (0) 2023.11.02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집  (0) 2023.10.29
인간의 흑역사  (0) 2023.10.27
A가X에게  (0) 202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