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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루비 #박연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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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포옹 에 이어 고른 작가의 두번째 책이다. 입안에서 구르는 느낌의 두단어, 여름과 루비는 아이들의 이름이었다. 작가의 유년시절이 녹아있을 추억들, 흔적들. 손끝으로 만져질듯한 문장들로 나긋하게 이어진다. 문장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옛추억을 노닥거리는 느낌으로, 이야기로, 감정으로 사람을 슬슬 밀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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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뻐해 주던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버리고 밤무대 건반치는 반건달 아빠는 새엄마를 데려왔다. 성질 까탈스러운 고모가 조금 챙겨주기는 하는데, 철없는 새엄마와는 매일밤이 전쟁이다. 이런 여름에게 루비라는 친구가 생겼다. 루비는 여름에겐 좋은 친구이나 부자집 공주 코스프레같은 허언증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선 왕따다. 그래서 둘은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둘만 만나서 논다. 비밀을 나누고 문제를 상의하며 유년의 푸릇한 시간들을 같이 보낸다. 물론 어린 그들도 사람인지라 닥치는 삶의 고난을 피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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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 가끔의 희열은 열살이 되기 전에도 이미 겪고 있었다. 이별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질투에 온몸을 부들거리는 날들도 있었다. 거친가족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어린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기도 하였지만 어린 나였기에 귀엽게 도닥여주기도 했었다. 친구와의 우정와 풋사랑도 나름 진지하기 짝이 없었으니 작은 나는 이미 세상과 열심히 싸우며 사람에 대해 배우고 있었겠다. 마치 이 책의 여름과 루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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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이 책을 더 당겨읽게 만든다.
나의 모친도 여름의 고모처럼 ‘신경증’이였다. 많은 날들이 곤두서 있었으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의 비명이 집안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박봉의 공무원 부친은 주말에도 집에 없었으며, 언제나 없는 돈타령과 '남들 보기에' 괜찮아야 하는 모친의 허영과 현실과의 갈등의 파편은 만만한 어린 나에게 튀었었다. 그래도 매일 맞진 않았고 맞을땐 동생과 같이 맞아서 외롭진 않았다. ☺️
나에게도 루비가 있었다. 반지하 창고 같은 방에 살던 그 아이는 그리 넉넉하지 못한 우리집보다 더 어려웠다. 습기찬 친구네 방 한쪽엔 어른들 책이 많이 쌓여있었다. 책 좋아하던 나와 친구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만화책이 없어 슬프긴 했지만 친구 삼촌의 책장이었는지 야한 잡지와 '고금소총'같은 어른책을 발견한 날은 신나기만 했었다. 😇 둘은 즐거웠다. 우리가, 아니 내가 사춘기에 감정기복에 시달리기 전까지 말이다. 중학교에 올라가 학교가 달라진 우리는 가끔 씩 밖에 보지 못했고, 어느날 나는 그에게 어떤 이유로 짜증을 내어 그를 떠나보내고 말았다. 그 나이 되도록 가장 좋아했던 친구가 그 였었다는 것 역시 한참 뒤에나 깨달았다.
계속 생각나는 유년의 추억을 자동 소환해 준 책이다. 아이때의 상처는 어른이 된 뒤에서 아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그 흔적을 가끔 보여준다. 오래된 상처는 아팠다고 추억했다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잘 보이지 않는 흉터가 되어 숨어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붉은끼의 정체를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p17 “ 고모는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법을 알았다. 아이들은 그런 식의 말을 어른들보다 더 잘 알아듣는다. ”
p37 “ 눈물은 기어코 흘러나와 귓속으로 들어간다. 눈과 귀는 이어져 있다. 눈이 내미는 것을 귀가 받고, 귀가 받아들이는 것을 눈이 밀어낸다. “
p66 “ 나는 ‘새’엄마가 싫었고, 그녀는 ‘헌’자식이 싫었다. “
p73 “ 나는 어릴 때에도 더 어린 날을 회상했다. 옛날과 더 옛날을 구분했다. 미래는 막막했다. 미래에게선 자주 등을 돌렸다. “
p80 "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
p93 “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 “
p101 “ 상심으로 죽을 수 있는 건 개와 어린애뿐이야. “
p160 “ 허영의 뒷모습은 외로움이다. 그날 저녁 고모의 잠든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
p160 “ 이야기를 탐하는 사람은 상처를 재배열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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