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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서사의 위기

by 기시군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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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위기 #한병철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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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우리 인간'종'의 관계형태를 살펴보자.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끝을 듣던 말던, 그 이야기엔 끝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오프라인 만남에서 인간들은 동일한 관계를 나누며 이걸 우린 '서사'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펜데믹 이후 점차로 줄어드는 사람과의 관계는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다. 디지털 상의 우리의 관계는 시작과 끝이 없는 ‘정보’를 주고 받는 것에 치중하게 된다. 타자의 ‘안’-맥락과 생각- 을 보려는 의지보다 ‘파편화’된 정보를 취사선택하려는 한 개별화된 인간의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이야기, 서사의 위기를 들고 나왔다. 스토리라고 명명된 내용들은 정보와 뉴스 뿐, '서사의 위기'에 대한 한 철학자의 '서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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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와 스토리의 구분 만으로도 충분하다. 잘 쓰여진 책 홍보문구를 다듬어 인용한다.

*서사
서사는 이야기하는 것이고, 축적된 경험의 발화이다. 자기존재의 증명이며 타인에게 공감을 유도한다. 공동체를 이루는 기틀이며 개별 발화자는 각 삶의 주체가 된다. 지속적이며 과거와 끊임없이 연결된다. 발화자의 방향성을 따른다.

*스토리
무엇인가를 설명하며 그것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다. 자신이 알고 느끼는 것을 광고하며 내가 준 정보처럼 타인의 정보를 원하며, 그것들은 교환된다. 필요에 따른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우리의 삶은 상품의 소비자로써 더 의미가 있다. 과거와의 연결은 의미가 없어진다. 순간에 집중하며 특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분절적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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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연인, 친구, 가족들을 많이 본다. 앞에 앉은 타자보다 스마트폰 안에서 번뜩이는 '재미'와 '정보'가 더 매력적인 탓이다. 사이좋은 파트너는 자신이 순간 느꼈던 '재미'를 눈 앞에의 상대에게 공유한다. 같이 웃는 것으로 삶은 행복하다. 과연 그럴까? 이렇게 재미있는 일상속에 살며 왜 우리들은 불안과 공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철학자는 근대 아우라의 상실을 이야기했던 '발터 벤야민'을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등 다양한 철학자들을 소환하여 지금의 대중들이 빠져있는 위기현상의 밑장을 깐다.

소비자로 전락해 버린 인간, 서로를 주체가 아닌 대상화해 버리는 지금의 구조. 사실 인간은 디지털적으로 살 수 없다. 순간과 다음의 순간은 0,1의 세계인 디지털처럼  넘어가진 않는다. 분절적인 삶은 반인간적이다. 연속적인 삶, 이어지는 이야기 안에서 살아간다. 느리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에 의해 기억되어진 사건들의 이음이며 그 안에선 벌어지는 인간의 선택과 비워진 틈이다. 이렇게 ‘서사적 성찰’은 개별 인간의 선택과 연결에 기반한다.  카페에 마주앉아 있어서 분절된 스토리에 매몰되어가는 우리는 덕분에 '성찰'이라는 아주 오랫동안 전승받은 인류의 선물을 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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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책의 모든 주장에 긍정하진 않는다. 철학자가 파악하는 빅데이터 문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빅데이터 상의 관계는 ‘상관관계’만을 파악한다고 철학자는 주장한다. 이유없는 결과물들만이 모여 있는 것이 빅데이터는 아니지 않을까?  완전히 열려있는 빅데이터는 과거처럼 인과나 직관 같은 ‘정신’의 작용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나, 현실에 대한 인간들의 ‘추론’경험의 축적을 동시에 모은다. 실용을 위한 AI가 가능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문제제기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구체적인 대안이 담겨있다고 볼 수는 없어 그점이 조금 서운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제기 만으로도 의미 있는 주제다. 특히 평소 과하게 SNS 등에 몰입하는게 아닌가 걱정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린다.

✍ 한줄 감상 : 책에서 재인용된 한나 아렌트의 다음문장 ‘ 모든 슬픔은 이야기에 담거나 이야기로 해낼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 p116 ‘ 는 말을 기억하자. 책은 스마트폰이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p14 “ 지식은 ‘멀리서’ 온다. 이러한 원격성은 지식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

p16 “ 아우라는 서사적이다. 아우라는 먼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

p20 “ 이야기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반면, 소설은 고독과 고립에 처한 개인이 낳은 산물이다. “

p37 “ 스토리텔링은 일차적으로 상업과 소비를 뜻한다. 스토리텔링으러서의 스토리텔링은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없다….. 후기 근대는 아우라가 없는 상태, 즉 미래가 없는 상태다. “

p48 “ 이들(디지털플랫폼) 서사적 맥락 없이 그저 접속사로 연결된 채 나열된다. 사건의 서사적 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성찰적 서사’와 살아온 이야기의 응축은 전혀 가능하지 않으며 요구되지도 않는다. “

p53 “ 기억은 체험한 것의 기계적 반복이 아닌, 언제나 새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서사다. “

p64 “ 디지털화된 후기 근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게시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면서 벌거벗은, 공허해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척한다. “

p81 “ 벤야민은 사물은 자신에게 머무른 시선을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럼으로써 사물은 시선을 가진 상태가 된다. 시선은 사물을 빛으로 감싸는 아우라를 가진 베일을 직조해 낸다. 아우라는 곧 ‘바라보는 대상에게 생겨난 시선의 거리’다. “

p94 “ 스마트폰은 타자가 자기 가신을 알리는 시선을 완전히 앗아감으로써 실제와 우리 사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차단한다. “

p97 “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는 허구의 자아를 유지시키는 거울 단계에 잔류한다…. 관찰자는 마치 소비 가축처럼 살찌워진다. “

p118 “ 경청은 상대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핟고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 “

p126 “ 신자유주의적 성과 서사는 모든 사라을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게 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과의 경쟁 속에 존재한다. “

p134 “ 서사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날것의 사실 또는 숫자보다 효과가 좋다. 감정은 무엇보다 서사에 반응한다. 스토리를 판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판다는 말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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