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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고통 구경하는 사회

by 기시군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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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구경하는사회 #김인경 #웨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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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고통'을 구경할 뿐이다. 끔찍하다고, 놀랬다고 하면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다. 내가 목격한 고통의 장면들은 나의 '좋아요' 소재일 뿐이다. 나쁜 대중이라고 욕만 해야하나? 그들은 방송에서 배운다. '국민의 알권리'를 핑계로 선별적인 고통의 장면들을 TV로 내보낸다. 유튜버들은 더하다. 어떤 고통도 팔수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이 책은 기레기가 아닌 진짜 기자의 양심고백이자 질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린내나는 상에 대한 나름의 실낱같은 처방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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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장면'이 팔리는 시대, 카메라를 들고 가장 가까이 고통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괴로움을 겪는 방송국 기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광주MBC보도국에서 오래 일해왔던 김인정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고통'의 상품화 현장에서 그것을 보게 만들어야 하는 언론인으로써의 책임과 의무의 범위를 정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있는 '대중'들이 '고통'을 어떻게 소화하는가 등 민감한 주제를 한권의 책으로 모았다.

SNS에 끔직한 사고현장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리트윗을 한다. 방송국의 카메라나는 어느순간 '사고의 끔찍함을 보여줌'으로서 유사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본연의 역할에서 조금씩 벗어나 시청률과 거기에 따른 광고주 압박에 타협의 유혹에 빠져든다. 나의 카메라가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인지 '고통 포르노'를 찍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는 사유없이는 그 경계선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공감한다. 방송이라는, 기자라는 직업과 시스템은 가장 넓게 타자들의 고통을 가져와 우리의 아픔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이 원론적인 이야기가 현실 대한민국에는 만만찮은 이야기가 되고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된 기사만을 읽고 있는 독자들, 극심한 경쟁탓인지 상대만을 탓하게 되는 젠더, 지역, 계급과 계층이슈 들. 저자는 답은 없다 말하지만 다양한 소재와 에피소드를 더듬으며 한줄기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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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10.29 현장에 구조대원과 쓰러진 사람들 이외에 구경꾼처럼 동영상을 촬영하여 SNS에 올려 '좋아요'를 수확하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결코 타인의 고통은 인간의 죽음은, 결코 구경꺼리가 될 수 없다.

2022년 여름, 집중호우로 반지하방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이 있던 그곳에, 대통령이 아래를 내려다 보며 '고통의 현장'을 구경하는 사진을 잊을 수 없다. 재난과 고통이 자신의 정치적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국민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나 이외의 인간은 그저 '좋아요'를 위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건 암울하기만 하다. 기업 종사자로서의 언론인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의 현장을, 끔찍한 죽음을 특종의 대상으로 시청률의 소재로만 활용하도록 길들여져 버린 그들을 우리는 언론인이라 부를 수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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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언급된 산업재해의 취재현장 이야기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공장에서 손가락 절단 따위는 뉴스가 되지 못한다. 최소 온몸이 갈리는 사고, 아니면 몇 명은 산업재해로 죽어야 데스크는 방송송출에서 분량을 할당해 준다고 한다. 크고 색다르며 극적인 죽음과 고통을 찾는다. 자신들도 그 죽음과 고통에 포함될 수 있다는 확율적 사실은 잊는다.

저자는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p34 ' 고통을 지켜봐야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 한줄 감상 :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전시하는 언론과 나는 아니라는 이기적인 대중들이 만들어내는 끔직한 고통 포로노시대에 대한 솔직한 르포물.

덧,
책을 읽자니 이선균배우 사건이 계속 오버랩이 되었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름과, 공공기간의 (의도적) 방조, 시청률경쟁에 목메는 하이에나 같은 방송국들이 달려들어 한 사람을 살해하고 만 사건. 세상은 더 좋아져야 하고, 좋아지기 위해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얼마전 #유시민 작가 방송에서 들은 멘트가 떠오른다. '설마 그럴리는 없지만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그 책임의 약 80%는 언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무언가 노력하지 않으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김인경 같은 기자들은 줄어들고 기레기들의 숫자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p24 “ 누군가 바로 앞에서 죽어가고 소방당국과 의료진, 시민이 응급처리에 나서는 와중에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렌즈를 현장에 겨누고 녹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10.29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

p49 “ 고통은 콘텐츠가 됐다. 콘텐츠가 된 고통은 디지털 세계속에서 클릭을 갈망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p77 “ 날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혹하고 무정해 보이지만, 실은 차별 없음과 거리가 멀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날씨 뉴스는 경제적 약자나 건강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뉴스 가치를 더 하게 된다. “

p94 " 문제는 산업재해라는 고통의 흔함이다.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p167 “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 것인가? “

p194 " 수도권 과밀화와 서울 집권화가 지역의 정보에 무관심한 현상을 부추기고, 정보와 여론의 불균형은 다시금 지역을 소외시키고서울 집권화를 공고하게 만든다. 지역의 고립은 지방자치에 대한 감시 같은 외부 시선이 필요한 영역을 느슨하게 한다. "

p203 " 중립적인 척하는 데 불과하지는 않은지, 맥락을 자르지는않았는지, 갈등과 논란을 단순히 중계하고 있지는 않는지, 중계한다는 명분으로 갈등을 재생산하거나 오히려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니까 언론 스스로가 갈등을 만드는 행위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되어서다. "

p225 " 난무하는 폭력의 이미지 안에서 무기력해지는 건 이미 시대의 기본값이 되었다고. 여전히 더 센 것을 보여줘서라도 그 둔감함을 자극하려는 세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그 안에서 기자나 독자 둘 다 길을 잃지 않기 위 해서는 부단한 자기 단속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뉴스가 왜 만들어지고, 뉴스를 왜 보고 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선. "

p226 “ 아직 답을 다 찾지는 못했고, 여전히 타인의 고통을 집어들어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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