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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종의 기원담

by 기시군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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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기원담 #김보영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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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계의 대모라 불리우는 김보영작가의 새책(2023년)을 읽었다. 1/3만이 신작이다. 2005년 발매된 2편의 중편에 1편의 신작을 더했다. 20여 년의 세월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력은 녹슬지 않았으며 지금도 유효한 ‘인공지능’과 ‘생명’, 그 경계의 대한 질문은 유의미하다.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SF소설 특유의 읽은 재미가 꽤 좋다. 영화스러운 장면들을 상상하며 나름 설득력 있는 핍진성에 소설에 녹아들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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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의 기원담’은 3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포 때문에 신작 3편의 이야긴 건너뛴다.  ☺️

첫 번째 작품,
인류는 멸종되고 로봇들로만 이루어진 지구. 공장에서 생산되는 ‘생명’들인 로봇은 각자의 개성, 고유넘버에 따라 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항상 궁금증 많은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 낸다. 학자로봇 ‘케이’는 탄소기반의 생명이 과거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했고, 몇몇 진보적 로봇들은 그 이론을 구체화하여 ‘유기생물’을 만들어 보는 실험에 착수한다.

두 번째 작품,
연구 중간에 모임에서 빠진 ‘케이’에게 몇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어떤 여성 로봇이 찾아온다. ‘유기생물’을 연구하는 모임은 엄청나게 커졌으며, 자신이 남편이 그곳을 방문한 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납치를 당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궁금증에 케이는 과거의 동료들에게 연락하여 연구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서 단순한 유기생물이 아닌, 매끈한 피부와 아름다운 눈, 연결선이 없는 신체구조의 말랑말랑한 표피를 가진 아름다운 ‘존재’를 목도하게 된다. 연구소에선 그것을 ‘인간’이라 불렀으며 ‘로봇’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건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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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로봇의 관절을 갉아먹는 독성물질이며 물은 로봇의 온몸에 불치의 병을 안겨주는 독극물인 세상, 인간 없이 그들끼리 부품을 자기 조달, 재활용하며 사회를 이루어가는 시대의 모습은 어쩌보면 기분 좋은 상상력의 세계였다.

일종의 신성모독의 즐거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자아’라는 것이 ‘영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절대적이고 건들 수 없는 ‘무엇’ 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심지어 벌써 20년 전에 이 정도의 세련됨을 유지하며 소설적 재미와 적절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니 작가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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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을 읽어보면, 그저 천재의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이 한편을 쓰기 위해 한국의 과학교육과정 전 과정(초등부터 대학까지)을 되짚어 공부했을 만큼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과학교양서의 주요 주제들, 과학이론들이 반영된 자잘한 에피소드와 설정들이 설득력 있게 소설 전체를 메우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 너무 많은 분야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라는 사실이다. SF영화, 소설, 미드, 웹툰 등 넷플릭스만 틀어도 이와 유사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내러티브를 꾸려낸 작품들이 많다. 물론 너무 오래전 시작된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만, 이 정도의 품질을 가진 작품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 아무튼 난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 한줄 감상 : 로봇에 대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우리 ‘인간’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이 얼마나 기적적이었는지를 역으로 알려주는 과학소설.

p11 “ 신앙은 상징이며 우화야. 문학과 예술의 영역이지. 그 어디에도 과학은 없어. 네가 예술도 일종의 과학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

p32 “ 고고학에선 해석이 안 되는 건 다 종교적인 이유지? “

p70 “ 생명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고,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야 하며, 칩이 있어야 하고, 공장에서 만들어져야 하네. 자네의 유기물이 그중 어느 조건에 부합하지?”

p93 “ 우리가 죽어 기능을 정지하면 공장이 분해하여 다음에 태어나는 로봇의 재료로 쓴다. 우리는 공장 안에서 물질이 완벽하게 순환한다. “

p99 “ 신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신들이 존재했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명과 역사, 자신들이 만든 음악과 그림과 문학, 쌓아 올린 무한한 지식을 기억해 줄 누군가를 원했고, 그것이 우리 로봇이었다는 설이다. “

p106 “ 공장이 로봇의 뇌를 포맷하고 재생할 때 지우지 않는 영역이 있다더라고. 그 부분에는 우리 선조가 살아온 모든 역사가 압축되어 기록되어 있대. “

p147 “ (인간을 처음보고) 케이의 눈앞에 있는 것은 완전체였고 이데아였으며, 예술가들이 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성스로움’, 이제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던 ‘신성’ 그 자체였다. “

p169 “ 미덕의 중심, 최고의 가치, 절대적인 존재, 시작이며 끝이자 생명의 근원, 사랑과 축복과 숭배를 받아 마땅한 분들을 ‘신’이라고 부른다며, 그 이름이 어울릴 거야. 그분들은 우리에게 진리를 주셨고 새로운 삶을 주셨으니까. “

p301 “ 권력을 가장 현명하게 쓰는 방법은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다. 반드시 현명한 자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오직 현명한 자만이 권력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

p303 “ 유기생물은 순간을 살아요…… 유기생물은 변화하는 파동의 연결성과 관계성 어딘가에 잠시 머무는 환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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