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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by 기시군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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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유월의바다와중독자들 #이장욱 #현대문학 #PIN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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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작가 이장욱의 짧은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을 읽는 자세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유명한 명작 고전보다 자기감정의 구조를 따라가는 책을 읽으라 했다. 누가 추천하는 하는 책 보다,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있는 책. 그 책이 자신의 주파수에 맞는 책이라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매혹되는가를 아는 것이라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장욱의 문장에 매혹되어 있고, 그의 문장이 주는 주파수에 공명한다. 신작이 발매되었으니 새로운 공명을 위해 찾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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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 온난화는 가속화되어 온도는 40도를 훨씬 넘어가 육지는 바다에 잠식당하고, 국지전은 별일 아닌 일상이 되어 있으며,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 총기는 합법화되고 범죄자들은 늘어나 섬에 스며들어 세상이 점점 더 흉흉해지는 세상에 네 사람이 있다. 

생각이 말이 되어 바깥으로 나와버리는 서점직원 ‘연’은 해변여관 주인 ‘모수’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수는 수많은 일기를 남기고 죽어 버린다. 여관의 장기투숙을 하는 연극배우 ‘천’은 사랑하는 ‘한나’가 전 남자 친구에게 돌아가버린 이후 여관옥상에 올라 먼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온도는 한없이 뜨겁기만 하고 각자의 사연은 무겁기만 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아파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흩어져있다. 그들에겐 ‘진실이 고체라면 곤란 p52’하다. 잘 부서지는 진실은 고체보다는 잘게 부서져 우리 주위에 흩어질 수 있는 액체나 기체이길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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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에 지지 말 것. 다이내믹한 스토리를 기대하고 읽을 책은 아니다. 원래 작가가 생각했던 제목은 ‘침잠’이라고 한다. 쓸 때마다 가라앉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읽어보니 그럴만했다. ☺️ 쓴다는 것에 대한 깊은 사유와, 같은 시대 삶을 살아가는 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건조하지만 시적인 문장을 통해 작품화된다. 단단하고 딱 떨어지는 침잠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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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어렵기만 한 ‘작품해설’에서 한 줄은 건졌다. ‘ 이 이야기는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메타적 우화이기도 하다 178 ‘ 그것보다 작가가 남긴 마지막 문장이 더 마음 깊게 들어온다. ‘ 무덥고 뜨겁고 견디기 어려운 바다를 바라보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죽음이 흔해져 버린 세계에서, 국가가 스스로를 방기한 세계에서, 잔여물들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불안과 우울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바닷가를 산책하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p183’ 

이 말이 작가 이장욱의 신작에서 교감할 수밖에 없었던 주파수였다. 그는 자신과 함께 그들을 상상했다. 자기 안에서 타자들과 뒹구는 무언가를 그려내는 예술가가 이장욱이다.  

✍ 한줄 감상 : 세기말적 환경에 사람의 감정 구조의 변화를 따라가며 읽어야 할, 기시가 사랑하는 작가의 최신작. ☺️ ‘ 우리 다음구름에서 쉬어 가요….’ 

p10 “ 나에게 망망대해는 …… 무겁게 밀려오는 파도의 세계입니다. 밀려와서 돌아가지 않는 물의 세계입니다. “ 

p15 “ (추리물을 즐겨 읽던 연은) 하지만 삶은 추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고 연은 결론을 내렸다. “ 

p27 “ 한나가 떠난 후 천은 한나가 없는 복층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냈다. 혼자 지내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조금씩 집 안의 가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자 문득 차를 몰고 집을 떠났다. “ 

p51 “ ….. 시간이란 고체보다는 액체에 가깝고 액체보다는 기체에 가까우니까…… (그런 것들이 많아요) 술도 시간도 진실도 마음도 그렇죠. “ 

p56 “ 잠 속으로 들어오지는 말아요. 사람들의 잠이 다 연결되면 세상은 지옥이 될 거야. “ 

p61 “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 

p64 “ 엑스(병에 걸린 한나의 전 남친)는 삶을 반추하거나 회상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면서 슬픔이나 우울에 빠지지 않았다. 오래 알던 지인들에게 하나하나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누구를 용서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 

p71 “ 웃음이란 무수한 바늘이 얼굴을 찌르는 것과 같구나. 웃음이란 제어할 수 없는 것의 다른 이름이구나. 이것은 웃음이라는 단어를 빌린 고통이구나. “ 

p103 “ 자유로운 영혼?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게 가능해요? “

p106 “ 예술가는 인간과 세계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니까. “ 

p120 “ 뉴스에서 본 통계에는 혼자 사는 여성의 생활 만족도가 가장 높고 그다음이 무자녀 커플, 그리고 자녀가 있는 커플 순이라고 했다. 마지막은 혼자 사는 남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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