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예술의사회사3 #아르놀트하우저 #백낙청 #염무웅 #반성완 #창비 #Arnold_Hauser
🏛️
이전 시대인 바로크가 조금 정색하고 예술을 창조해 내었다면, 세상은 다시 그 경향에 반동을 만들어낸다. 로꼬꼬는 고전주의적이며 종합적이고 분석적이었던 바로크의 반대에 서 있는 로꼬꼬로 시작한다. 유명한 #프라고나르 의 #그네 라는 그림을 떠올려보자. 그네 위에서 미소를 띠며 바닥에 있는 애인에게 신발을 던지는 모습. 그걸로 한 시대의 예술사는 시작한다.
🏛️
1장 로꼬꼬와 새로운 예술의 태동 (18세기후반-말)
로꼬꼬는 왕실이 아닌 귀족 예술이다. 성이 아닌 침실을, 궁전대신 서재를 화려하고 우아하게 꾸미는 것에 목적이 있는 장식미술이었다. 어찌보면 로꼬꼬가 르네상스 예술의 최종 목표였을 수 있다. 시대의 예술정신은 프랑스에서 부르주아들이 더 발달한 영국으로 넘어간다. 피 흘리는 혁명을 피했고, 산업혁명이 더 발달한 영국에서 힘 있는 ‘시민계급’은 초기 낭만주의 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루쏘 :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표어였다.
2장 계몽시대의 예술 (19세기 후반- 10세기 초반)
계몽시대의 대표장르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계몽을 위한 철학의 시대였다. 특히 독일에서는 고전주의 경향과 낭만주의 경향이 결합되는 움직였으며, 인문주의자들은 문화와 교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괴테 : 그는 이상주의, 유미주의, 보수주의 경향 안에서도 자유와 진보의 ‘계몽주의’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였다.
3장 낭만주의 (19세기 초 - 19세기말)
낭만주의는 계몽과 이성에 대한 반동으로 만들어진다. 낭만주의 시작 후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다비드 는 이전 시대를 그림들을 완전히 극복한다. 그의 #호리티우스형제의맹세 #마라의죽음 에 유럽인들은 열광하였으며, 낭만주의는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움직임이었다. 혁명의 시기를 같이했고, 우상을 숭배할 수 있었으며, 대중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다. 1792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루브르’에 미술관을 만들 것을 결정했다. 프랑스의 경우 낭만주의의 초기는 왕정복고의 지향하다가 후반기 자유주의 운동으로 발전한다.
*월리엄터너 : 그를 통한 바다를 보자. 빛과 흐릿한 사물의 묘사는 뒤의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빅토르위고 : 낭만주의는 문학의 자유주의다.
🏛️
어떤 문예사조든 작용과 반작용은 반복된다. 엄숙은 화려함을 부르고 계몽은 자유를 불러낸다. 19세기말의 낭만주의는 이성보단 감정을 논리보단 상상력을 중시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순간 포착된 순간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목표라 했다. 이러한 경향은 철학과 문학, 음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회적 토대의 변화에 공명하며 출렁거리며 변화해 간다.
🏛️
헤겔의 변증법, 아니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 의 말이 생각난다. 시대를 지배하던 유행도, 모든 지식인이 옳다고 믿었던 윤리도 시간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계속 변해간다. 이 세 번째 책이 그걸 다시 증명하고 있다.
✍ 한줄감상 : 로코코는 귀족의 쾌락을, 계몽주의는 이성과 계몽을, 낭만주의는 감정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유행’들이었다.
p31 “ ‘귀족’이 16세기의 정신적 대표자이고 ‘신사’가 17세기의 그것이라면 18세기의 정신적 대표자는 ‘교양인’, 즉 볼테르의 독자이다. “
p53 “ 17세기 프랑스 전원소설은 지친 시대의 읽을거리다. 내란으로 피폐해진 이 사회는 사랑에 빠진 목동들의 아름답고 나긋나긋한 대화를 읽으면서 고단함을 풀었던 것이다. “
p66 “ 로꼬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한 극단적인 형태를 발전시킨다. “
p105 “ 노동을 하나의 윤리적 가치로 끌어올려 이를 찬양하고 숭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공과 이익을 위한 노력의 이데올로기적 변형이자, 노동의 열매에서 가장 적은 몫을 차지하는 노동자들까지도 감격해서 협력하도록 자극하려는 시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
p135 “ 음악은 17세기말까지 실용성에서 전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실용적이지 않은 음악이란 전혀 없었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순수한 연주음악은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생겨났다 “
p237 “ 혁명적 프랑스는 예술을 순전히 혁명의 쟁취를 돕기 위한 목적을 위해 이용했으며, ‘예술을 위한 예술’ 이념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생겨난다. “
p254 “ 프랑스혁명은 결코 프롤레타리아트나 하층 시민계급의 혁명이 아니라 금융업자와 실업가, 즉 봉건귀족의 특권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신장을 방해받긴 했지만, 생존에는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던 계급의 혁명이었다. “
p255 “ 혁명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에겐 끝없는 환멸이 엄습했고, 계몽주의의 낙관적 세계관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p279 “ 노발리스는 낭만주의 시를 ‘쾌적한 방식으로 사물을 소외시키는 예술, 즉 사물을 낯설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친숙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추천도서 #bookstagram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세계사 #사회사 #문학론 #르네상스 #문명 #예술사 #문학과예술의사회사_기시리뷰
'Cul-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도 (0) | 2024.05.10 |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0) | 2024.05.08 |
침팬지 폴리틱스 (0) | 2024.05.02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2 (0) | 2024.04.30 |
지구의 생물체는 항복하라 (0) | 2024.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