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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마지막 이야기들

by 기시군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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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야기들 #윌리엄트레버 #문학동네 #문학동네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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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의 장점은 이야기의 문을 닫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 순간 눈앞에 던져 놓은 사건의 뒷 이야기들을 열어놓고, 독자의 참여(상상)를 기다린다. 거기에 짧은 이야기 자체에 절제된 서사와 품위 있는 묘사까지 있다면 안성맞춤이다. 잘 쓰여진 단편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처음 만난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들이 그랬다. 의외였고 놀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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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인상적이였던 4편의 개요를 보자.

*장애인
연금을 받는 장애인 남자에겐 여자가 있다. 부부는 아니지만 남자의 생활을 돕고 돈을 받는 관계. 어느 날 남자는 길 가던 떠돌이 폴란드 형제에게 집의 외벽 페인트 칠을 맡긴다. 꽤 긴 작업. 비가 많은 날은 작업을 할 수 없다. 오랜만에 다시 작업을 하러 장애인집에 방문한 형재. 집안 분위기가 다르다.

*다리아카페에서
‘애니타’는 남편을 오랜 친구였던 ‘클레어’에게 빼앗겼다. 부부가 살던 접에 애니타는 나왔고, 클레어가 남편과 동거를 했다. 시간은 지났고, 남편은 죽었다. 클레어가 애니타를 찾아온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모르는 여자
집 청소를 해주던 여자가 어느 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근거는 없다. 둘이 사랑했던 걸까?

*겨울의 목가
시골농장에 사는 어린 ‘메리벨라’의 가정교사로 대학생 ‘앤서니’가 시골집에 찾아온다. 둘은 설익은 풋사랑을 했고, 앤서니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을 하고, ‘지도제작자’라는 직업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가진다. 메리벨라는 부모님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농장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혹시나 싶어 농장을 방문한 앤서니는 성장하여 더 아름다워진 메리벨라와 재회를 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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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한 문장이 오래 남는다. ‘ 죄책감은 자신에 대해 말해주지요. p80 ‘ 책을 읽으며 일상을 살아가며 느끼게 되는 감정들의 더미들 사이에 ‘죄책감’은 그런 역할을 해 왔구나 하며 다시 느꼈다. 나의 걸음이 갈지자로 휘적거리다가도 영영 딴 길로 빠져나가지 않게 도와주는 게 죄책감이었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품의  많은 주인공들이 여성이다. 섬세하고 사건과 감정들이 미묘하게, 아름답게, 기괴하지만 추하지 않게 얽힌다. 사람을 쓸쓸하게도, 허무하게도, 독자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문득 떠오르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지만, 최소한 아일랜드나 영국 등 유럽작가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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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내 주위에 일어날법한, 또는 내가 겪을 듯한 삶의 사소하거나 평범한 사건들에 세공한듯한 문장들이 소설을 평범하지 않게 만든다. 작가는 단편을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 p241’로 정의했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우울해진다는 작가. 60여 년을 활동하며 수백 편의 작품을 쓴 작가. 작가 사후에 선별된 작품만을 모은 작품집이다. 그래서 더 읽을 만했을지 모르겠다. 좋았다. ☺️

✍ 한줄감상 : 잘 쓰인 단편소설은 이런 것이 다라는 걸 보여주는 장인의 예술품.

p42 “ 그녀가 채찍을 손에 쥔 건 그게 그녀가 잡을 수 있도록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반드시 연금이 계속 나오게 할 것이다. “ 

p54 “정적은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있다. 산울타리의 양귀비와 초원의 데이지를 비추던 햇살은 나무들의 황혼 속에 종적을 감추었다. “

p79 “ 그림들은 퇴색된 빨강과 파랑, 거의 회색인 초록, 흰색에 가까운 노랑으로 색조가 낮춰져 있었다. “

p111 “ 그녀의 삶은 이대로도 족했다. 음악을 듣고, 요리에 공을 들이고, 정원을 가꾸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탈리아의 초기와 중기 르네상스 작품들에서 기쁨을 얻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들도 그랬다. 그녀는 오랜 세월 그 가치를 인정받아온 소설들을 읽었고, 현대소설에 대해서는 스스로 평가를 내렸다. “

p129 “ 그녀는 그 아름다움이 돌아오는 걸, 다시금, 전보다도 더 찬란하게 빛나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모든 게 잘못된 세상에서 그 아침은 하나의 조롱으로 보였다. “ 

p185 “ 그녀는 자신이 과거 속에 살고 있으며 과거는 늘 거기, 그녀 주위에 있고 자신은 과거의 일부로 조재할 것임을 알았다. “

p203 “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신랄한 짜증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나면 그 두 가지가 다 찾아올 터였다. 그다음엔 무관심, 경멸, 멸시가 이어질 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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