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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이것이 인간인가

by 기시군 2024.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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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인간인가 #프리모레비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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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들에서 너무 많이 인용되어, 이미 읽은 듯한 기분이 드는 책들이 있다. 이 책 ‘이것이 인간인가’가 그랬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생활에 대한 수기라는 타이틀 때문에 증언집이 가질 수도 있는 지루함(?)도 생각했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아니었다. 문학도도 아니고, 화학자로 레지스탕스로 살아오던 한 사람이 이 정도의 현장감과 문학성을 살리며, 과하지 않은 절제미까지 유지하며 책을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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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주인공 레비가 수용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소지품은 모두 빼앗기고 줄무늬포로복, 모자, 속옷, 나막신이 전부다. 4일간 기차로 이동하면서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그가 물을 찾자 수용소 선배가 이야기한다. 물은 배급되지 않는다. 식사로 나오는 죽에 들어간 수분으로 견뎌야 한단다. 

그가 들어갔던 시가가 마침 레닌그라드전투에서 독일이 밀린 시점이라 노동력이 좀더 필요한 때였다. 건강한 젊은이였던 레비는 다행히 가스실을 피해 아우슈비츠 3 수용소로 배속되어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중노동으로 보낸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곳은 인간성 따위는 사라져 버린 만인에 대한 생존투쟁의 장소임을 깨닫게 된다. 기회가 있으면 훔쳐야 되고, 조금이라도 덜 힘든 일을 하게 꾀를 부려야 한다. 내일을 생각할 수 없다. 배고픔과 추위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가스실행을 잊고 살아야 한다. 이것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레비는 극단적인 이기적인 행동만이 난무하는 수용소에 그는 ‘로렌초’라는 선행을 하는 인간을 만난다. 그의 태도를 보면서 수용소 밖에는 아직 ‘올바른 세상’이 ‘야만스럽지 않고 증오와 두려움’과 무관한 세상이 남아있을 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 지점에서는 그는 생존의 가치를 생각한다.  
살아남겠다는, 그리고 살아남아 이 곳에서의 현실을 외부에 알리겠다는 결심을 했고, 너무나도 운 좋게 살아남아 이 책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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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과 기억의 서술은 힘이 있다. 겪었던 일들은 생생하게 독자들의 가슴속에 파고든다. 인류의 기억이 되어 다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말아야 할 당위를 준다. 그러나 지금 당시 피해자였던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집단학살의 현장을 지켜보며 이러한 레비의 노력은 다시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닌가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인간성이 지배하는 시기는 있지만, 다시 ‘이성’이 세상을 바로잡아 줄 것이라 믿고 살아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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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출소 후 몇년 지나지 않아, 당시 수용소에서 몰래 메모해 놓은 몇 장의 종이들과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갔다.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증언록의 취지를 잘 살리면서도 서서구조와 문학적 요소들을 잘 활용하여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재능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책 후반에 부록으로 딸려있는 레비 자신의 Q&A, 이력, 해설 등을 보면 후속작품들도 꽤나 각광을 받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타작가로 성장했다고 한다. 

책을 덮으며, 한가지 생각할 거리가 생겼다. 그런 그가 자신의 마지막 삶을 스스로 끝내버렸다는 사실. 1987년 레비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간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고 인정받는 작가가 된 이후의 결정이어서 더 의아스럽게 느껴진다. 왜일까. 아직은 답을 못 찾겠다.

✍ 한줄감상 : 단순한 생존수기가 아닌, 인간 본성과 윤리에 대한 깊은 고찰을 던져주는 문학적 작품. 

덧,
오래전에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겐 이와 조금 유사한(물론 강도로는 비교할 수 없다)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선착순, 뺑뺑이, 비품훔치기, 구타와 폭력, 폭행… 개인적으로 웃픈 기억 하나가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옛날 군대는 군대에서 김장을 했다. 김장독을 파는 업무를 맡아 계속 구멍을 파고 있는데, 구멍 깊게 안 팠다고 행정관 발길질에 구멍에 거꾸로 처박혔던 기억. 😂 아픔보다 X팔림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남자들 군대와 축구이야기는 금기인데, 문득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봤다. 양해를 바란다. 😉

p19 “ 나와 같은 객차에 탔던 45명 중 다시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네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객차가 가장 운이 좋은 경우였다. “

p57 “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 

p111 “ 수용소 자체가 배고픔이다. 우리 자신이 배고픔, 살아 있는 배고픔이다.”

p132 “ 인간들은 뚜렷하게 구별 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구조된 사람과 가라앉은 사람이라는 범주다. “ 

p133 “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모두 절망적일 정도로, 잔인할 정도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 

p150 “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있다. 조직을 꾸미는 것과 동정을 얻는 것, 그리고 도둑질이다. “ 

p159 “ 기다리면 시간이 평온하게 흐른다.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무슨 일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와는 달리 일을 할 때는 매 순간이 힘들게 흘러가서 부지런히 그것을 쫓아버려야만 한다. “ 

p178 “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변화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 ‘변화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 “

p188 “ 우리는 겨울을 맞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싸웠다……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우리들 열 명 중 일곱 명은 죽는다는 뜻이다. “ 

p241 “ 지금 나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 

p263 “ 우리 존재의 일부분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눈에 하나의 사물일 뿐인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경험이 비인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269 “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

p281 “ 독일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수십 만 명 중 첫 희생자들이 반 나치스 정당의 정치가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려는 민중의 의지는 훨씬 뒤에야, 무엇보다 유럽 공산당 덕택에 싹트기 시작했다. “ 

p303 “ (히틀러 같은)히틀러같은)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아이히만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20년 뒤 알제리에서 학살을 자행한 프랑스 병사들, 30년 뒤 베트남에서 학살을 자행한 미군 병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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