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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그대의 차가운 손

by 기시군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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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차가운손 #한강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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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에서 노벨상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책 중 읽지 않았던 책을 찾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책이다. 이십 년도 더 전에 발표된 책이지만, 오래된 책이란 느낌이 별로 없다. 오히려 사람의 가슴을 힘들게 하는 후기작들보다 가독성이 좋아 말 그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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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H에게 딱 한 번밖에 만난 적 없는 조각가 장운형의 스케치북이 전달이 된다. 그 안엔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 오는 장운형 자신에 대한 내면의 이야기들과 작가가 되어 여인의 신체를 석고로 떠내는 작업을 해오며 만나게 되는 여자들과의 이야기가 담담히 적혀있다.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부모 밑에서 살기 위해 가면이 필요하다는 걸 일찍 알아버린 운형은 모범생 연기을 잘 수행해 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시간에 무언가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조소에 빠져버린다. 미대를 갔고, 가면 안의 실체라는 진실을 조각으로 찾는 것이 그의 일이 되어버린다. 

첫 번째 모델 L, 끔찍한 청소년기 피해의 여파로 100kg의 과체중식탐녀가 된 젊은 L은 장작가가 보기엔 성스러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석고로 뜨고, 몸을 뜬다. 비극의 상흔이 신체의 껍데기에 덕지덕지 붙어버려 마음까지 다쳐버린 그녀와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두 번째 모델 E, 깔끔하고 아름답고 스마트한 느낌은 실내 인테리어 전문가 E 에게서 그는 순간순간 그녀에게서 드러나는 공허감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쁜 얼굴 사이로 드러나는 ‘역겨움’과 ‘끌림’ 사이, 그녀의 진짜 얼굴이 궁금해진다. 격동적인 충동에 동침을 하는데도 메말라 있는 그녀, 그는 그녀와 자신의 껍질을 깨는 작업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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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의 #몽고반점 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예술에 대한 영감과 욕구의 경계선이 선명하지 않게 들이치다 밀려나가는 모습에 사람들은 많은 거부감을 가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장윤형을 통해 몽고반점의 ‘형부’에 대한 의문점들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술은 어떤 결여에서 시작되고, 그것을 대신하려는 무언가를 신이 아닌 ‘나의 손’으로 창조하는 것으로 빈 곳을 메우려 하는 행위일지 모르겠다. 작가 한강은 예술이 가지는 근본에 대한 성격과 고민을 한 권의 소설로 직조해 낸다. 그것도 평생을 싸워오고 있는 권력과 가부장, 시선이 가지는 ‘폭력’이란 대상을 마주하며 말이다. 아직도 우리는 이런 종류의 폭력에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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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으로 유일하게 아는 한 미술계 작가님께 작업과정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장면들을 상상했다. 도구들, 공간,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만들어 낼 것들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과정. 부러웠다. 일반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과는 더 두텁게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분이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한줄감상 : 시선의 폭력 앞에 공허해져 버리는 피해자 여성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들과 접해있는 남자, 예술가의 작업은 각자가 해석해야 할 몫이다. 

덧,
인체에 석고를 떠서 작품을 만드는 ‘라이프캐스팅’이라는 기법이 모델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처음 알았다. 석고가 굳을 때까지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굳으면서 많이 뜨거워져 뜨거움을 견디어 내야 한다고 한다. 순간, 손 정도라면 나도 그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단 생각을 했고, 내 손을 떠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p62 “ 내가 알게 된 것이란, 진실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였다…. 진실을 믿기 때문에 깊이 상처 입으며 쉽게 회복되지 않는 종류의 사람들. 그들의 삶은 나에게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

p83 “ 남들이 모두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집요하게 의심했고, 남들이 모두 만족하는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남들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

p85. “ 애정이란 그렇게 쓸쓸한 것이다. 한순간 강렬하게 찾아들지만, 의지할 만한 물건은 못 된다. 곧 변형되고 때로는 퇴색되며 영영 휘발되어버리기도 한다. “ 

p96 “ 안쓰러워 보일 만큼 속물적이던 이들도 어느 순간에 이르러 자신만의 고귀한 면모를 드러내는 걸 목격하기도 했지. “

p168 “ 오래전부터 이 아이는 따뜻함과 사랑을 혼동해왔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희미한 쓸쓸함을 느꼈고, 그보다 희마한, 까닭을 알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 

p228 “ 그날 밤 E와의 일은 나에게 생경한 고통을 주었다. 성장을 한 여자의 옷을 벗겨놓고 보니 열세 살 난 여자 아이였던 것 같은, 불쾌하고 씁쓸한 자의식이었다. “ 

p251 “ 나는 왜 이 여자를 바라볼 때마다 미미한 환멸과 공허, 구역질의 기미를 느끼게 되는 걸까. “ 

p280 “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 강렬한 양가적 감정의 끝에 쓰라리게 배어 있는 어떤 것이 연민과 흡사한 데가 있다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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