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 #한강 #문학과지성사
📚
초판을 가지고 있었다. 시집을 서랍에 넣어놓고 팔아버린 것도 아닌데, 책을 못 찾겠다. 가지고 있어야 할 책이다. 새로 받아 든 책이 깨끗하다. 한 장 두 장 넘기다. 다 읽어 버리고 만다. 그녀의 서랍에 빠져버렸다.
📚
무언가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덜컹 가슴이 내려 앉으며 무언가 포장 가득한 말을 지껄이는 나 같은 범인이 있다면, 그 순간 밥을 먹는 시인이 있다. 시인의 입술 너머로 들어가는 밥은 그녀를 버티게 하는 작은 힘이 된다. 그 힘은 그녀 안에는 단어와 문장들을 꾸려낸다.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치는’ 그녀는 연약하지만 지지 않는다. 발설할 수 있는 시어들을 찾으며 ‘혀가 녹으면 입술을 ‘ 연다. 진하디 진한 단어가 문장이 되어, 시가 되어 흘러나온다.
그녀는 ‘눈동자처럼 고요’하다. 가끔, 슬픔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흘렸던 눈물은 흔적이 거의 없다. 가끔 하얀 돌을 쪼그려 앉아 ‘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 하며 부러워 하지만, 생명이 있음을 두려워 하진 않는다. 입을 열어 발설해야 할 의무를, 본능을, 책임을 저버리진 않는다. 아니 못한다.
📚
그녀가 가진 의지를 나는 가지지 못했다. 직선적으로 자신의 안을 바라보며, 스스로 느끼는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기가 힘들다. 숨쉬는 공기가 십 년 전 어느 누구와 함께 나눴던 공기의 한 줌이 함께 할 텐데,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나의 사념은 흩날려 사려져 버린다.
고통에 대해 말하려면 언제나 양심에 걸렸다.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 더 심한 고통을 당하고도 더 아픈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사람이 있는데 하는 자책감. 자아의 고통과 타자의 고통이 서로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 인간임을 공유할 수 있는 시인이 있다.
할 수 있는 기억 뿐이라고, 기껏 힘내 입술을 열 뿐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었다고 순간을 일깨워준다. ‘더러운 손’이라도 서로의 눈을 훔칠 수 있다고. ‘나를 긋고 간 것들’의 흔적을 힘들게 지워가며 아직 부스러지기 전의 입을 열어 세상에 말을 건다. 독자에게 말을 건다.
📚
11년만에 다시 읽은 건가? 그때보다 감정이입을 더 느끼게 된다. 물기 없는 눈물이 꿈틀거렸다. 지난 과거가 순간 지나가는 추억들이 그 고통의 흔적들이 아프게 내 눈을 밟고 지나간다. 시인에게 처럼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한다면 난 그녀처럼 오래 안아주지 못할 것 같다. 개 같은 새끼라 욕은 못하겠지만 외면하게 돌려보내 버릴지 모르겠다. 단지 그녀처럼 ‘말은 필요하지 안’을 것 같다. 개별자들의 운명이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한줄감상 : 위대한 작가는 같은 주제를 평생 변주할 뿐이다. 그녀는 그저 인간에 대해 쓸 뿐이다.
p37 “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개 가슴에서 당신은 /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 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
p53 “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
p64 “ 목과 어깨 사이에 얼음이 낀다 / 그게 부서지는 걸 지켜보고 있다. / 이제는 더 어둡다 / 손끝으로 더듬어 문을 찾는 사람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알지 못한다 / 그가 나가려는 것인지 (어디로) 들어가려는 것인지 “
p75 “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 아파서도 아니고 / 아무 이유도 없이 /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 나는 두 팔로 껴안고 /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 왜 그래. / 왜 그래. / 왜 그래. / 내 눈물이 떨어져 /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 문득 말해봤다 /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 괜찮아. / 괜찮아. / 이제 괜찮아. / 거짓말처럼 /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 누그러진 건 오히려 /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 어떻게 해야 하는지 /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 괜찮아 / 왜 그래, 가 아니라 / 괜찮아. / 에제 괜찮아. “
p87 “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다. “
p116 “ 그래서 말해보았지, 저녁에 / 우는 새에게 / 스물네 시간을 느슨히 접어 / 돌아온 나의 / 미밀을, (차갑게) / 피 흘리는 정적을, 얼음이 / 덜 녹은 목구멍으로 / 내눈을 보지 않고 우는 새에게 “
p124 “ 첫새벽에 바친다 내 / 정갈한 절망을, /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
p126 “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p131 “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 나에게 말을 붙이고 /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 오래 있을 거야. /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 잘 모르겠어. “
#독후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bookstagram #독서 #추천도서 #book #책추천 #책소개 #서평 #시집 #노벨문학상 #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_기시리뷰
Cul-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