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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시간 #한강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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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겨놓은 책들이 많은데 자꾸 한강작가 책에 손이 간다. 축제를 끝내기 싫은 마음인가. 희랍어시간을 다시 들었다. 역시 십 년이 넘은 시간이 흘렀다. 조금은 흐릿하게 남아있는 이미지들을 정돈하고 싶다. 장편치곤 짧은 분량 탓에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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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모국어를 잃었다. 우리말과 글을 잃어 버렸다. 첫 번째 말을 잃었을 때 뜻도 모를 프랑스어를 발음하며 겨우 말을 찾았었다. 두 번째 말을 잃고 나니 이제는 쓰지도 않은 사어, 희랍어 공부를 통해 말 찾기를 시도한다. 두 번째 일이 벌어질 때즈음 그녀는 엄마를 떠나보냈고 이혼을 했으며, 아홉 살 아들의 양육권도 빼앗긴 상태다. 현실이 그녀의 말을 앗아갔는지는 모른다. 일단 그녀는 희랍어 수업을 듣는다.
그는 눈을 잃어간다. 유전병으로 몇년 후면 완전히 실명을 한다. 독일로 이민을 갔지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희랍철학을 전공한 탓에 한 아카데미에서 희랍어 수업을 강의한다. 그곳에서 수강하러 온 말없는 그녀를 만난다. 그에게는 듣고 말하기를 장애가 있는 잃어버린 첫사랑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자꾸 그녀가 신경 쓰인다.
그러던 그들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예기치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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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운전을 하다, 앞차에 치어 우그러지는 작은 새를 본적이 있다. 작은 몸 탓에 피는 적었지만 멈짓했고 끔찍했고 조심성 없이 무심히 지나가는 앞차 운전자에게 욕을 하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만약 작가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나보다 훨씬 더 ‘과민’하게 정서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작가는 ‘우리’보다 더 깊게 슬픔을 공명하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다. ‘소년’과 ‘작별’이 그들의 슬픔에 공명하며 쓰여진 글이라면 ‘희랍어시간’은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신의 겪은 유사체험과 고통의 깊이를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태어나지 못할 뻔 한 여자, 태어난 후 자신이 세상의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싫은 여자. 언어와 세계가 결합되는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아는 여자. 아들에 의해 ‘펑펑 내리는 눈의 슬픔’이라 명명받은 그녀의 글은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다. ‘말’이란 칼로 그 사건들을 겪을 때 어떤 디테일들이 있었는지. 뉴스에서 한 사내가 피습을 당했다의 문장안에는 그 칼이 어깻죽지와 배를 뚫어 창자에 가르고, 얼굴을 그어 30센티가 넘은 상태가 났으며 그런 칼부림을 수십 차례 당해 그 주위는 피바다였다는 이야기는 없다. 타자에겐 피습일 뿐인 이 일이 당한 사람에겐 이렇게 끔찍한 일일 수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난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그는 그녀를 (우리처럼) 알 수 없다. 그는 그녀가 무슨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그것조차 말할 수 없는 그녀의 사정을 그는 모른다. 그는 그의 첫사랑의 추억과 상실해 가는 물리적인 시각에 대한 자신의 연민에 가득한 인물이다. 그가 고통스럽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그녀이다. 고통을 겪은 그녀는 겨우 세상에 연을 대고 있다. 아홉 살 아들이라는 작은 생명체에 의탁하여 세상과 들리지 않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침잠에 빠져있다. 후반부 이 둘의 하룻밤은 그의 말과 그녀의 ‘기척’으로 이루어진다. 그에겐 충전이자 열정으로 솟아오를 일이 그녀에겐 ‘아픈 자를 위한 다독임’으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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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산다는 것의 고단함을 그녀는 더 많이 깊이 느낀다. 아무리 자신의 자리를 줄이고 사람들을 배려해도 폭력은 우리의 일상이다. 견디며 하는일은 왜 살아야 하는가 이유를 찾은 것뿐이다. 삶과 죽음은 가까이 있고, 고통스러운 그녀와 같은 이를 구원을 간청하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뿐이다. 또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언어를 찾기위해 희랍어를 배우고, 고통을 호소하는 남자를 돕기 위해 기나긴 밤을 보낸다. 쓸 수 없었던 글이 그의 손등에는 적혀질 수 있었다.
고통의 근본에 대한 예술적 반영과 묘사. 시각과 언어를 넘어서는 시간의 흐름에 몸 맡긴 나약한 '언어'의 예술가의 고뇌. 역설적이게 말하지 못함과 보지 못함의 결여로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는 관계에 대한 레퀴엠. 이것이 ‘희랍어시간’, 예민한 감수성이 만든 강박의 예술품이다.
✍ 한줄감상 : 고통받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오독되기 쉬운 ‘고통’ 자체에 대한 서사시.
덧,
이 책은 #디에센셜한강 에 전문이 실려있다. 이 책엔 또한 한림원에서 언급했던 9권 중 한 권인 #회복하는인간 도 실려있으니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참고 바란다.
p15 “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
p19 “ 처음의 침묵이 출생 이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침묵은 마치 죽은 뒤의 것 같다. “
p39 “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거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
p45 “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
p62 “ 오래전에 끓어올랐던 증오는 끓어오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오래전에 부풀어 올랐던 고통은 부풀어 오른 채 더 이상 수포가 터지지 않았다. “
p80 “ 가끔 생각해. 혈육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 “
p112 “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
p120 “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
p121 “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
p147 “ 기척 없이 그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
p155 “ 잉크 위에 잉크가, 기억 위에 기억이, 핏자국 위에 핏자국이 덧씌워진다. 담담함 위에 담담함이, 미소 위에 미소가 짓눌러진다. “
p165 “ 셀 수 없는 혀와 펜 들로 수천 년 동안 너덜너덜해진 언어. 그녀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덜너덜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졌다. 누덕누덕 기워진, 바싹 마른, 무표정한 심장. 그롤수록 더 힘껏 단어들을 움켜쥐었다. “
p166 “ 끝없이 붉은 미등을 켠 차들의 행렬 속에, 수천 개의 스케이트 날들로 할퀴어진 하루하루 속에. 그토록 쉽게 부스러지는 육체들 속에, 그 모든 걸 잊기 위해 주고받는, 뚝뚝 끊어지는 어리석은 농담들 속에, 그 어떤 것도 잊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 적은 말들, 그 속에서 어느새 부풀어 오른 거품들의 악취 속에. “
p183 “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오래전 아이였을 때,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해도 되는지 알 수 없어 어스름이 내리는 마당을 내려보았던 것을 모른다. 바늘처럼 맨몸을 찌르던 말들의 갑옷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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