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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인폴 #백수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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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혀두었던 백수린작가의 첫 단편집을 읽었다. 이상하게 별것 아니지만 ‘입술을 훔치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 이 세대는 입술은 훔치는 것이 아니다. 10년도 더 전엔 우리는 입술을 훔치고, 마음도 훔쳤다. 왠지 과거로 돌아가 착한 도둑질과 착한 거짓말을 구경하고 옷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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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인상적이었던 3편의 개요만 본다.
*폴링인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나 교포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난, 왠지 연하의 ‘폴’에게 마음이 갔다. 누나처럼 따르며 친하게 그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더니 갑자기 어느 날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왠지 들뜬 마음으로 나간 만남자리에서 ‘폴’은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감자의실종
큰일 났다. 세상사람들이 갑자기 ‘감자’를 ‘개’라고 부른다. 감자를 굽고, 볶고, 찐다. 끔찍하다. 어떻게 감자를 그렇게 먹는단 말인가. 멍멍 짖고 애교 가득한 감자들을 말이다.
*자전거도둑
무명그룹사운드 보컬 안나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제이, 그리고 역시 무명의 웹툰작가인 난 방세를 아끼기 위해 한집에 산다. 무척이나 죽이 잘 맞고 나름 즐거운 집이었다. 안나가 P라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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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여러 인물들을 만났다. 눈앞에 그 남자에게 ’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남자의 흔적’을 찾는지는 사랑 속의 여자와 유명 연예인의 숨겨인 아내라는 환상 안에서 고통받는 인물. 유령이 출몰하는 지역에 사는 첫사랑 선배를 찾아가는 고시생 등. 의외로 유머스러운 상황도, 공포스러운 배경도, 극히 현실적인 고통들이 혼재되어 물결치듯 인물들에게 다가간다.
삶이란 이렇게 즐겁다가 고통스럽다가 외롭다가 킬킬거리다가 잠이 드는 과정일 터이다.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언급했듯이 작가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첫 소설집부터 그것에 성공한 것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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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작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언어와 소통이 소재로 많이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타자와의 거리감이 비슷하게 스친다. 하지만 많이 다르기도 하다. 문작가가 내비게이션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면, 백작가는 그 보단 대책 없이 여행을 떠나며 뜻하지 않은 광경을 보여준다.
무엇이든 안정적으로 ‘위험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그런 침식의 과정에서도 발끝에 힘을 주고 희망으로 뛰어오르려는 단단한 의지 역시 놓지 않는다. 짧은 비애와 긴 고독이 가득하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책이다. 잘 읽었다.
✍ 한줄감상 : 의외로 숨겨둔 무기가 많음을 알게 해 준 능력자의 데뷰작.
덧, 하나
등장인물 중 한 명은 면접시험장에서 ‘예술이 무엇인지 말해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라면 뭐라고 답변을 했을까? 아마 우리가 인간임을 환기시켜 주는 무언가라 하지 않았을까?
덧, 둘
책 후반에 작가 인터뷰가 실려있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조용하고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 발표 같은 것도 못했는데 소설에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즐거워진 소녀가 어느새 좋은 작가가 되어 버렸다. ☺️
p31 “ 우리가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
p64 “ 폴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
p121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면 그건 모두 감자와 개의 신념 따위의 사소한 것들 때문이라는 것뿐이었다. “
p146 “ 그날 밤, 꿈에서 나는 P와 다양한 체위로 잠자리를 가졌다. 모두 나의 첫 남자친구가 추천한 애로 비디오 속에서 본 듯한 체위들이었다. “
p159 “ 우습게도 상대가 나보다 더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면 할수록 나는 상대에게 더욱 관대해졌다. “
p209 “ 사실 사랑이 식는데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만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
p249 “ 우리는 익숙한 얼굴의 이웃만큼만 친밀했고, 오래전에 헤어진 남매처럼 서먹했다. “
p273 “ 선배는 학생운동에 투신하던 옛 선배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가벼웠고, 취업에 매진하는 우리 세대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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