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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영원에 빚을 져서

by 기시군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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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빚을져서 #예소원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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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에 즐거워하며, 발매하자마자 쟁겨놓았던 이 책을 꺼냈다. 전작인 #사랑과결함 피드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다. 사실 PIN시리즈는 중편소설 분량이라 읽기 편해, 어제 점심시간에 후다닥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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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캄보디아 해외봉사단에 참여하며 친하게 된 3명의 친구 중, 석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이했던 동이와 란이는 그녀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캄보디아로 떠난다. 

사실 동이의 엄마 장례식에도 오지 않던 석이는 세월이 길이 만큼 소원해진 상태였으나, 그녀가 사라진 곳이 캄보디아라는 소식에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보낸 몇 개월의 시간 안에서 세명은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하며 마음속에선 각자의 경험을 담고 돌아왔던 것이다. 비스듬히 어긋난 마음들로 9년이 흘렀다. 그곳에 가면 석이 말고도 뭔가를 찾을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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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며 마주치는 죽음과 죽음들에 대한 질문들은 자주 잊게 되는 주제다. 작가는 이 중편을 통해, 그것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한, 혹은 태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다. 

구체적으로 ‘세월호’, ‘이태원참사’ 같은 끔찍한 죽음들을 지켜보아야 했던 우리의 ‘마음’이 각 개인들 마다 어떻게 소화되며, 영향을 주며, 변해가는지를 그리며, 죽음의 기억이 우리에게 스며드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우리는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지만 다른 삶을 산다. 같은 사건을 목도하지만 다른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다. 이걸로 된 건가? 어떤 이는 ‘그들의 죽음’에 무심하다. 자기 먹고 살기 바쁘다는 말이 나쁜말일까? 어떤이는 민감하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는 비난이 가능할까? 누구는 벌써 잊었나고 힐난하며, 누구는 아직도 그러고 있냐며 핀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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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때때로 잊히지 않은 것이 바로 영원이라고. p66’ 말하는 작가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는 ‘잊히지 않은 것’에 빚을 졌다. 작가는 우리가 ‘연루되어 있지 않은 일에는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 p94’ 들이 되지 않길 바라며 마음의 빚을 책에 새겼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그개와혁명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책 덕분에 이미 과거로 희미해진 ‘죽음들’에 대한 기억을 되짚을 수 있었고, 가까웠던 ‘죽음’까지 다시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질문이 담긴 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 한줄감상 : 슬픔을 믿는 사람들이 늘길 바라며, 먹먹한 마음이 스러지는 걸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착한 마음이 담긴 중편.  

덧,
책 안에 담긴 단어 중 하나인 ‘궤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작가 말처럼 한 사람 인생의 궤적은 그 사람 만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을 두고 벌어지는 옅거나 깊은 관계, 사건과 행위 등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사람이라는 구체성이 확보될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배경이 ‘나’라는 존재의 ‘궤적’을 생각하게 한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작은 ‘긁힘’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킨다. 그 모습에 다시 실망을 더하는 어리석음이 내 일면이기도 하다. 좋은 궤적을 그리다 사라지고 싶은 욕심남이다. 이렇게 써놓으면 비슷한 짓거리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족을 달아둔다. 😇

p10 “ 이제 ‘죽은 듯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너무나 몹쓸 말이다. “

p19 “ 가난은 나를 어딘지 단단히 비뚤어진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술자리에서도, 학과 행사에서도, 어떤 자리에서도 티가 났다. 하지만 더욱 잔인한 것은 그렇게 티가 난다는 걸 나만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p93 “ 석이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신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고, 죽은 사람이 좋은 곳에 간다고 믿어야만 산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라고, 나는 그 말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 

p104 “ 마음을 쏟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 

p108 “ 아무도 그런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 “

p113 “ 상실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수많은 상실을 겪은 채 슬퍼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거고 그것은 나와 관계 맺은 이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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