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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 #카멜다우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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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이 언밸런스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스웠다. 다루는 사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으나 그걸 표현하는 문장은 오히려 가볍게 날아오르려 한다. 알제리의 국가/종교 분쟁을 다룬 리얼리즘 소설을 상상하고 읽었는데, 읽기 시작하니 한강작가가 슬며시 나타난다. 한강을 통해 광주를, 제주를 알아갔을 외국인 독자가 되어, 이 책을 통해 알제리라는 우리와 같은 ‘인간’ 사는 지역의 끔찍한 비극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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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독립전쟁만 알았지, 피의 10년은 몰랐다. 1990년대 알제리는 세속 군부권력과 극단적 원리주의 이슬람 세력의 내전이 십 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과거 제주처럼 낮에는 군인이, 밤에는 산에서 내려온 광신도가 민간인을 약탈하고, 강간하고, 납치하고 목을 베었다. 수십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2005년 양대 세력은 ‘화해’를 한다. 십 년에 대해 어떤 설명과 발설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을 제정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묻혔고, 시간이 그 위에 흙을 덮어갔다.
주인공 오브는 1999년 12월 31일 밤, 신에게 바쳐지는 양처럼 목이 베였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양엄마 하디자의 보살핌을 받아 성장했지만, 그녀의 후두와 성대가 파괴되었고, 목 가운데 구멍으로 그녀는 숨을 쉬며 이십 년을 살았다. 양쪽 귀 끝을 이어가는 흉터를 오브는 ‘미소’라 불렀고, 잠깐 만나고 떠나간 남자의 아이가 배 안에 있다. 그 아이에게 후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오브는 계속 아이와 대화를 이어간다. 오브는 후리를 죽일 작정이다. 죽이기 전,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오던 그곳, 고향을 후리에게 보여주고 싶다. 여행을 떠난다.
여행길을 많은 목소리가 함께 한다. 서점을 운영하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비극의 기록자 ‘아이사’는 오브의 ‘미소’를 증거로 쓰고 싶어 했다. ‘함라’는 무장단체의 납치가 되어 그들의 신부로 살았던 여자다. ‘화해’의 법에 따라 도살자 남자들은 연금을 받고 사회적 지위를 다시 찾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함라는 테러리스트의 이름으로 숨죽이며 살고 있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이어지며, 오브는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가운데로 계속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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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체라 해야 하나. 끝없는 ‘말’이 500페이지 이어진다. 피해자의 고통이 농축된 문장이 다시 구어로 풀어지며, 잔잔하지만 이를 악문듯한 문장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직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우리가 새천년을 기대하던 1999년 그곳은, 여자는 노예이며, 남자의 소유물, 스스로 살이 조금만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인생이 결딴나는 세상, 지도자 이맘은 ‘ 이 나라의 악은 여자들의 벌어진 허벅지 사이에 있다고 p118 ‘ 말해도 되는 장소. 하나님을 위한 장소라 하지만, 인간의 반에겐 지옥인 장소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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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지평은 넓어질수록 좋다.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대상은 확대될수록 좋다. 카뮈의 도시 오랑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현실의 악과 그 희생자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잔인하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제의를 올리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미래란 곧 과거라는 사실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어. 이제 누가 나를 읽어 줄까? p373 ‘
거악에 대한 어설픈 용서와 화해는 우리의 미래를 망친다. 친일청산을 하지 않고 대충 화해하는 척 끝낸 탓에, 기득권은 언론을 통해, 재벌을 통해, 군인을 통해 비극이 반복되어왔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우리의 상황을 곱씹게 된다. 아직 내란이 종식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상황, 어설픈 화해는 우리의 미래를 망칠 것이다.
✍ 한줄감상 : 그곳에서도 ‘과거’가 ‘현재’를 구했으면 싶다. 역사라는 진실의 무거움과 그걸 풀어내는 문장의 아름다움이 늦은 밤 시간까지 책장을 덮지 못하게 했다.
덧, 하나
잊을 뻔했다. 이 책은 민음사에서 근무하시는 태태님(@taetae0308) 리뷰 제안으로 읽게 되었다. 덕분에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덧, 둘
오랜 시절, 인류는 그들이 필요에 의해 만든 신의 교리 안에서 살고 죽었다. 과학과 이성이란 도구로 세상의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신과 인간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나름의 균형을 이루어 간다. 그러나 어디든 지체현상은 있다. 원시 기독교가 폭력적이었던 것처럼, 근본주의 이슬람은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다.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 다양성의 존중이 인류 보편 상식을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정의. 그 정의에게 칼자루를 쥐어 주어 다시 하나의 종교를 결단낼 수 도 없다. 이슬람 혐오에 빠지지 않으면서 반인간적인 이슬람의 폐습을 막을 방법은 있을까?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
p27 “ 네가 네 밤 속에 네 줄을 잡아당기고 있어도, 난 한 권의 책이야. 서서히, 내가 너를 위해 빛을 밝혀 줄게. “
p29 “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사는 건 가시가 가득한 통로를 걷는 거야. 널 사랑으로 죽일 거야. “
p65 “ (목의 흉터) 이건 시간이 없어 나를 끝장내지 못한, 살인자가 내게 남긴. 길쭉한 캘리그래피 서명이야. “
p122 “ 믿는 자는 후리(남자들의 성노예)를 두 명, 또는 일흔둘, 또는 5백, 또는 8천 명을 받는다. “
p143 “ 무장 단체들은 갓난아기들을 부엌 화덕에 넣고 태웠어. 여자들의 배를 가르고. 머리를 잘라 집 문간에 놓았고, 신의 기쁨을 위해 어린 여자아이들의 목을 그었지. “
p171 “ 그래, 딸아, 죽은 긴 생이란다. “
p238 “ 마키(무장세력의 아지트)에서는 여자랑 결혼을 한다고 해도, 여자가 임신을 하면 목을 베었어, 왈라. 전장이니 가볍게 지내고 싶은 거지. “
p385 “ 이 나라에는, 우리 여자들에게 공중화장실이라는 것이 없다. “
p419 “ 망각은 하느님의 자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들의 불의이기도 해요. “
p449 “ 망각은 자비예요. 우리의 힘이죠. 왜냐면 하느님조차 그건 할 수 없거든요. “
p496 “ 거기서 나는 이맘이고, 정육점 주인이고, 과거에는 목을 베던 흐메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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