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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작약과 공터

by 기시군 202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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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공터 #허연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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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서평하긴 어렵습니다. 그저 책을 덮고 남은 잔상들을 개인적인 기억들 사이로 밀어 넣을 뿐입니다. 

오늘같이 몽롱한 날(네. 어제 술 한잔 했습니다.😎)에 시집 핑계로 넋두리 좀 해도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몇 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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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반추를 들여다봅니다. 사연은 시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림자, 또는 흔적들만 남겨져 있습니다. 시어들 사이로 흘려내리는 단어들만이 보일 뿐입니다. 독자는 단어를 주워 들 뿐입니다.


시를 쓰면서
슬픔에 슬픔을 보태거나
죽음에 죽음을 보내는 일을 했다. 
 p107


시는 무엇에 무엇을 더하는 일인가 봅니다. 그리움엔 그리움을 더하고, 사랑엔 사랑을 더하면 시가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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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이 피어있는 공터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늘 궁금했던 인생이라는 것이 
언뜻 보이다 말았다. 
p146
 ‘ 

몇 년 전 어느 날 피붙이의 안방에서 보았던 개인적인 현실의 악몽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도 인생이란 걸 얼핏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꽃 밑에서 인생을 본 것 같지만, 저는 곰팡이가 핀 시든 검은장미를 통해 인생을 본 듯합니다.  

이제는 정확히 한 프레임, 한 프레임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쇼츠 영상처럼 30초로 단정하게 다듬어진 칼날처럼 남았습니다. 내 등에 박혀 한 방울씩 슬픔을 흘립니다.

‘ 
슬퍼서 숨을 때는 빗속에 숨는 거야
p17‘

진저리가 날 만큼 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진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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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밤새 과거에게 먹이를 주는 밤 p47’을 지샌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젊음이란 무기를 들었지만  경험이 없고 약했기에 ‘ 먹고사는 일엔 늘 말문이 막혔p50’ 습니다. 시인처럼 저도 ‘생은 곧 모멸일지도 모른다 p72’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제겐 사라진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의 멍청함을 놀리며 개똥철학을 나눌 수 있는 오랜 친구였습니다. 조건 때문에 사랑을 놓친 이후, 세속에 나와 앉은 스님처럼 말하며, 돌팔이 점쟁이 같은 자세로 술을 마시던 친구였습니다. 모멸감을 버티며 같이 생을 살아내자 생각한 친구였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사라졌습니다. 아는 연락처를 다 돌려봐도 친구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사라진 그해 그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죽을 곳을 찾아 길을 떠난 코끼리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시간이 지나 애도할 슬픔도 굳었습니다. 

‘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운 스텝으로 
눈물 사이를 지나쳐 가는 것
사는 일이다
p101 ‘

별 이유 없이 그 친구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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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시인의 시집은 처음 읽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탈출을 했고, 나름의 고단함 속에 점점 더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을 봤습니다. 

슬픔의 시인 같지만,
사랑의 시인이기도 합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사이 
세상은 당신으로 가득 찬다 p61’ 며 

시인은 사랑을 추억합니다. 
누군가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사이가 될 수고
누군가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사이가 될 수 있는 그 순간들의 ‘가득 참’이 새삼 따스합니다. 

유한한 사랑의 감정이 시어가 되어 이렇게 새겨집니다. 

✍ 한줄감상 : 시집을 읽고 쓴 낙서입니다. 시집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습니다. 독자 나름의 몇 줄을남겨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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