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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기다리며 #사뮈엘베케트 #민음사
책장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책이다. 가끔 정리하다 마주치는 표지 사진이, ‘너 언제 읽을 거냐? ‘ 시비 거는 듯하게 느껴졌다. 고도를 기다려봤자 오지 않은 걸 아는데 이걸 무슨 재미로 읽지 하는 반발심에 덕에 오래 묵었다.
며칠전 배우 신구선생님과 박근형선생님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쇼츠를 우연히 보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분이 100 몇 회의 연극을 마치고 서로 포옹을 하는 장면에서 왠지 삶에 대한 처연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주인공은 나무하나 덜렁있는 황량한 벌판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군지 뭘하는 사람인지 왜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의 지루함에 둘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모자란 블라디미르와 좀 더 모자란 에스트라공의 대화는 반복되는 기억의 상실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던 첫째 날, 짐을 잔뜩 짊어진 러키와 그의 주인 포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역시 두서없고 무의미하다. 밤이 되자 고도의 심부름 꾼 소년이 나타나 고도씨는 내일 온다고 소식을 전한다. 다시 내일이 왔지만 상황은 변화지 않는다. 지루함에 목을 맬까 싶었는데 끈이 부실해 실패하고, 둘은 의미 없는 대화 속에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은 이 작품이 초연되었던 1953년부터 계속 작가에게 쏟아졌다고 한다. 작가의 대답은 내가 고도가 누구인지 알면 대본에 써놓았을 것이라며 자신도 모른다고 발뺌을 했다고 한다. 거짓말일 것이다. 노벨상 수상에서 시상식 참석을 거부했고, 철학을 모른다 인터뷰 하곤, 사후 집에선 많은 철학책이 발견되었으며 나치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곤 그저 보이스카웃 정도의 활동이라 말할 정도니, 고도가 누구인진 알아서들 잘 찾아보쇼라 직절적으로 말했어도 이해해 줄만 하다.
고도가 누구인지 한번 짐작해 보자. 책을 읽고 나면 (물론 연극을 보았다면 더 했겠지만.) 당신들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잖소라는 말이 떠오른다. 반복적이며 잘 소통하지 못하면서 ‘비슷한 모자’를 돌려써 가며 삶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게 현대인들이다. 나도 고도를 기다리나?
처음엔 오지않은 희망을 생각했다. 다음은 실존주의적인 해석으로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세상에 내던져진 건 동일하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인 기다림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오지 말아야 할 죽음에 대한 변주일까? 답은 어려워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책에 쓰인 둘의 심리 상태. ‘ 무엇이 되었든 고도가 오면 그들은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
내게 오면 행복해질 무엇에 대한 부조리극, 의미없는 질답과 상황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넌 뭘 만났을 때 가장 행복하니’를 묻는 길고 긴 질문이 하나의 작품이 되어 현현한 것이란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말이다.
✍ 한줄감상 : 내가 기다려야 할 각자의 ‘고도’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 그리고 가볍게 무거워지는 법을 알려주는 책.
p19 “ 딱히 오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 말인 안 온다면? / 내일 다시 와야지 / 그리고 또 모레도 / 그래야겠지 “
p49 “ (짐꾼 럭키가 왜 짐을 내려놓지 않느냐의 질문에) 그건 내게 감동을 주려는 거요. 버림받지 않으려고. “
p80 “ 그런데…. 어째 떠날 마음이 안 나는데. / 그게 인생이죠 “
p89 “ (소년에게) 넌 네가 불행한지 아닌지도 모른단 말이야? / 몰라요 / 꼭 나 같구나. “
p92 “ 우리가 이렇게 같이 붙어 있은 지가 얼마나 될까? /모르겠다. 한 오십 년? “
p104 “ 사방에서 고르미 흘러나오는데. / 이 나무를 좀 봐. / 같은 고름이 두. 번 흘러내리지 야 않지. “
p110 “ 이러면 어떨까? 우리가 행복한 걸로 해두면 ? / 무서운 건, 이미 생각을 했다는 거야. “
p156 “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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