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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기시군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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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왕녀를위한파반느 #박민규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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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김에 대한 추억, 두 가지.

대학을 입학하고 조금 친해진 여자동기가 어느 날 말을 했다.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자신에게 고백을 하란다. 그럼 사귀어준다고. 그냥 술만 먹으며 일주일을 훌렁훌렁 넘겨버렸다. 왜 고백하지 않냐고 추궁당하진 않았다. 다만 대답은 준비하고 있었다. ‘넌 못생겼어. ’ 그래도 계속 서로를 아끼는 친구로 지냈다.

고3, 스트레스로 피부도 좋지 않고 살까지 찐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옆 변기에 달라붙은 친구. 얼굴을 돌려 날 쳐다보다 말한다. ‘나도 못생겼지만, 너도 참 못생겼다. ’ 그 못생긴 둘은 서로의 미래 연애생활을 저주하며 오랫동안 같이 소주를 처먹고 돌아다녔었다. 뭐 나이 드니 서로의 연애생활에도 별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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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이 책은 오래전 표지로 가지고 있었다. 읽지 못했다.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새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화 예정이란다. 궁금해졌다. 

저자의 말 대로, 이 소설은 ‘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 p434’이다. 가상의 러브레터이며, 가능하기 힘들어 아름다운 소설이다. 

물론, 오래된 소설에서 느껴지는 하루키의 자장, 한걸음 더 깊게 들어가 과장스레 느껴지는 정조, 작위적인 ‘요한’과 같은 인물 설정이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 전구를 보고 어린 왕자의 B-612 같다’고 말하는 스무 살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박색이란 한자어를 본 게 얼마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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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찾아온 친구 같았다. 반갑지만 서먹한 친구. 정서도 필체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익숙함’이 잊고 있던 추억의 무엇이 바닥에 물이 올라오듯 몸을 적시는 것 같았다. 

매력적이었던 건, 리듬감이었다. 특이한 리듬감, 서두를 꺼내다가 뚝하며 떨어져 다음 문단으로 넘어오는 서술방식.. 그걸 통해 독자와 대상의 간격을 조금은 띄어내 보려 한 듯하다만, 오히려 더 글 안에 밀착되는 기분에 휩싸인다.

이 안쓰러움을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스무 살을 흘려보낸 지 이렇게 오래되었거늘, 스무살 나도 천장을 바라보며 인생은 참 힘든 것이다 뇌까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생의 ‘이상함’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고백하자면, 이 소설의 완성도나 후반부 결말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깊게 감정이입’되었다. 등장인물들과 같이 아팠으며, 슬펐으며,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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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주제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나 역시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 p231’하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자기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타인에게 ‘얼평’을 하거나 가십거리로 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의 다수는 이것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뻐’와 ‘착해’, ‘돈 있어’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는 아직도 계속된다. 영화도 성공을 해서 이런 세상에 최소한의 한마디는 남겨주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 한줄감상 : 이 땅에 ‘못생김’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은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보다 더한 취급을 당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덧, 하나
서두의 ‘못생김’의 두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좋아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찌릿하다.  

덧, 둘
소설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표범 이 ‘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가장 많이 웃었다. 😂

덧, 셋
몇 년 전 세상을 떠나가 버린 개그우먼 박지선 씨가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못생긴 사람이 이쁜 척하는 걸 젤 꼴 보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외모마저 개그의 소재로 썼던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슬픔은 여기서 다시 전이된다. 

p36 “ 지나온 삶이 아까울수록 인간의 기억은 아쉬워진다. 터무니없이 짧았던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이었다. ”

p45 “ 세상은 못생긴 여자들로 가득했었다. 인간에겐 늘 멸시할 만큼의 추함이 필요했고, 역시나 그해에도 인류는 무수한 부수의 신문을 발행했다. ”

p58 “ 인간의 세상에 비해, 밤바다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다. ” 

p67 “ 인간은 결코 진실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 

p139 “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 주고 싶은 거니? ” 

p203 “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p226 “ 인간의 골목 …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

p240 “ 사랑은 상상력이야. ”

p279 “ 저는 당신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나라는 여자에게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 

p308 “ 어린아이처럼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있던 봄볕과… 그 포근한 등을 살짝살짝 떠밀던 소심한 바람을.. 나는 보았다. “ 

p324 “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 

p331 “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 

p353 “ 스무 살이었다. 무작정 어떤 일을 벌이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였다. “

p379 “ 어둠 속에서 결국 나는 살아 있는 왕녀를 위한 왈츠가 아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서의 내 삶을 직시한다. “. 

p417 “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야. 이 삶을… 이 구멍투성이의 삶을 조금은 메우고 싶다는 기분… “ 

p437 “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 

✍ 생각거리 : 사회적 시선 폭력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급’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좋게는 ‘연민’이나 ‘동정’으로 나쁘게는 ‘혐오’로 구성된다. 학벌, 이혼, 늙고 젊음, 지역, 직업, 젠더, 가난, 장애까지 다양하고 너무 넓은 폭을 가진다. 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볼 문제다. 

✍ 비슷한 책 : 문제의식은 김애란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의식에 문학적 감수성까지 생각한다면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도 같은 자장 안에 있다. 하지만 스타일로는 하루키다. 물론 하루키는 내면의 허무, 의미에 대한 고찰이라면, 박민규는 사회관계 안에서의 사랑을 다루지만, 문장의 스타일 등장인물의 구성 등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와타나베에게 학교 선배 나가사와가 있었고, 책의 등장인물 ‘나’에겐 ‘요한’이 있었다. 나오코와 미도리의 어디쯤에 ‘그녀’가 있지 않나 싶다. 

✍ 남긴질문 : 시선의 폭력에 대한 경각심에 대해선 이해했다. 개인적으로 돌아와 못생긴 상대를사랑할수 있냐는 책 안의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물론, 미추의 상대성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야 보다 보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눈에 콩깍지가씌어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너무 심한 경우, 숨겨진 장점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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