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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그저 하루치의 낙담

by 기시군 2026.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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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하루치의낙담 #박선영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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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가 없었다. 재래식 언론사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 쓴 에세이라니. 작명 센스는 있다 싶었다. 난 그저 하루치의 낙담만 하겠다는 다짐이 담긴 제목에서 은근히 저자의 글맛을 기대하게 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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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쾌락 때문에 책을 좋아한다는 말에 동감했다. 낙담이란 단어가 쓸개가 떨어진다는 해설에서, 작년 겨울 이미 쓸개를 떼다 버린 나로선 더더욱 뭔가 인연이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 잡혀가며 책의 앞부분을 읽어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욕망을 따라서 인생을 살아간다. 내 삶은 지금까지 축적해 온 내 선택들의 총합이다. p42’ 오호, 멋진 문장 아닌가. 어디서 본 듯도 하지만 내용에 동의하며, 때깔까지 나는 문장이다.

사실 이 책은 에세이로 가장한 자서전이다. 숨길 수도 있는 인생의 사건들은 계속 호출되며, 용감하게도 감정의 속내를 터덜 터널 잘도 드러낸다. 자꾸 슬픈 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해서, 난 왜 이렇게 우냐며 속으로 타박을 했다. 변명까지 그럴듯하다. ‘깨달음이란 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p106 ‘이라는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당신이 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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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활 17년, 두 아이의 엄마. 한없이 아이를 사랑하지만 마음이 아픈 아이를 두고 있다. 똑똑하고 능력 있으며 통찰까지 넘치는 글을 쓸 수 있다. 젠체하지 않지만 세련된 자기 파괴의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문장구사 능력이 부럽다. 유머감각 또만 뒤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 가장 부러운 것은 어머니, 그녀의 어머니였다. 자식의 모든 것을 품어주는 ‘말’을 할 줄 아는 어머니의 존재. 그 책을 어머니에게 헌사할 만하다. 그녀의 반은 그녀의 어머니가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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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에겐 좋은 사람이 모인다. 복도 많다. 박선영기자님. 당신이 좋은 사람이란 소리다. 조언도 잘 듣겠다. ‘ 없는 것만이 소중하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건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p339’ 맞다. 내가 그렇다. 이렇게 늙어가며도 자의식 과잉의 피해의식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못했다. 

내 모친이 내 인생에 도움을 준 적은 딱 한번 있다. 첫 입사한 직장에서 만난 직속상사는 그 지랄 맞음 덕분에 팀원이 6개월 이상 버틴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으로 유명했단다. 난 신입사원 주제에 그분 밑에서 몇 년을 버텄고, 그분 덕분에 승진도 빨랐다. 모친이 왜 도움이냐고? 그 상사 성격이 내 모친과 판박이로 똑같았기에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극도로 이기적인 인간들의 행동패턴에 익숙하다. 

생각보다 너무 깊게 빠져 읽었다. 이런 종류로 같은 성별의 작가의 책을 읽고 싶다. 이 시대 늙어가는 남자들도 나름의 사연들이 있다. 박기자처럼 생생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이야기가 읽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잘 버티다가 책 뒤편에서 결국 저자에게 졌다. 두 번 울었다. 눈이 빨게 지도록….😎

✍ 한줄감상 : ‘숭고’를 실천하진 못하더라도 ‘지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 둘 만한 책. 꼭 위인만이 전기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좋은 동료의 삶의 궤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p21 “ 기사는 언제부터인가 쓰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 되었다. 막아야 하는 기사에서 의미를 찾기란 몹시 어렵다. 거기서 노동소외가 발생한다. “ 

p29 “ ‘언론’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그 전부를 쓰레기라고 비난할 때, 무너져내리는 이들은 언제나 좋은 기자들이라는 걸 좀 알아주면 좋겠다. “ 

p38 “ 돈은 아무리 좋아봐야 두 번째로 좋아야 하는 것이다. 당장 생존을 도모할 방도가 없을 때가 아니고서야 돈이 가장 좋을 수는 없다. “ 

p57 “ 진실이란 언제나 총체적이다. 부분적 진실이란 거짓이기 십상이며, 자신의 선을 위장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다. “ 

p70 “ 회의라는 게 본디 리더의 삽질을 침묵으로 견디는 시간이건만.. “ 

p75 “ 출세란 흙 묻은 알사탕과도 같다. “ 

p95 “ 우울증이란 되고 싶은 나와 되어 있는 나 사이의 격차 때문에 생겨난다. “ 

p100 “ 역대 수능 만점자 여덟 명을 모아 MBTI 검사를 해봤더니 F는 한 명도 없었다는 풍문이 불현듯 떠오른다. “ 

p119 “ 어엿한 중산층이 된 기득권자들이 옛날의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약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 

p183 “ 고통의 속지주의에는 비겁이 도사리고 있다. “ 

p199 “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분투를 통해서만 고귀해진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겠지만….. 인간의 고귀함은 획득형질이다. “ 

p223 “ 누군가 울고 있다면 마음 놓고 울라고 음악을 크 게 틀어주는 것-오에 겐자부로- 말고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269 “ 우리에게 필요한 건 9일짜리 화끈한 여행이 아니라 행복을 365일에 적절히 분배하는 기술이었다. “ 

p271 “ 삶 속에서 쫓기고 있다면. 여행 속에서도 쫓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 

p303 “ 운이라는 놈이 특히 비열한 것은 항상 처음에는 초심자의 행운으로 인간을 유혹한다는 점이다. “ 

p336 “ 엄마랑 시골 가서 살자. 너 글 쓰는 작가 되고 싶다고 했지? 대학 안 가도 그건 할 수 있잖아? 엄마가 시골에 식당 차려서 돈 벌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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