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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와그의주인 #밀란쿤데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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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합리적 이성을 지향한다. 그 반대 자리에는 '감성'이 존재한다. 이성이 마비된 감성은 '무분별과 불관용의 토대'가 된다고 믿는다. 아니, 그런 경험을 했다. 어린 시절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기억, 프라하의 봄을 짓밟던 소련의 탱크. 이데올로기는 이성의 탈을 쓴 과장된 감성이었고, 그는 크게 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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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그 맥락 위에 있다. 쿤데라에 따르면 68년 이후 삶이 각박해진 시점,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희곡으로 각색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역으로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각색하겠다고 맞제안했고, 그렇게 이 작품이 탄생했다.
쿤데라는 실험적이고 '천재적인 무질서의 작가' 디드로를 사랑했다. 원작을 자기 스타일로 '변주'하여,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결의 『자크와 그의 주인』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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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주인과 하인 자크가 목적지도 이유도 모른 채 말을 타고 여행한다. 자크는 첫사랑 드니즈와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만 번번이 방해받는다. 주인에게는 친구에게 연인을 빼앗긴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여관에서 만난 여주인의 이야기까지 뒤엉키며 세 개의 사랑 이야기가 서로를 잠식해 들어간다. 저마다 말을 잘라가며 자기 이야기하기 바쁘다. "모든 것은 위에 쓰여 있다"는 자크의 숙명론과 이를 반박하는 주인의 설전이 극 내내 반복된다.
이야기는 늘 방해받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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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스스로를 '극도로 정치성을 띤 세상의 덫에 걸려든 쾌락주의자(p.16)'라 칭한다. 평생 그 덫과 싸워왔다. 의미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 그 흔적들이 곧 그의 작품 목록이다. 이 희곡은 그 싸움이 희곡이라는 형식으로 발현된 결과물이다.
작품 안에서 서술자가 직접 등장하고 감정이입을 막는 낯설게 하기 효과는 얼핏 브레히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브레히트가 그것을 정치적 각성의 도구로 썼다면, 쿤데라는 달랐다. 그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형식과 구조를 탐구하기 위해 그 방식을 택했다.
쿤데라전집의 마지막권이다. 중간에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남아있다. 읽어야 할 글이 많은데 왠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먼저 읽어본 기분이 든다. 아직 읽을 ‘그’가 많다.
✍ 한줄감상 : 쿤데라 문학의 축소판. 자유와 운명 사이에 낀 인간 존재에 관한,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이야기, 혹은 그 '형식' 자체에 대한 실험.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원작 ‘숙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 발간되어 있다.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p11 “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거슬리는 건 그의 책이 풍기는 분위기였다. 모든 것이 감정이 되는 세계. 다시 말해 감정이 가치와 진리의 수준으로 승격된 세계라는 점이다. “
p13 “ 감성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것이 가치처럼, 진리의 기준처럼, 행동을 정당화하는 증거처럼 간주되는 순간 위험해진다. “
p19 “ ‘돈키호테’부터 ‘율리시스’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세상이 우리에게 믿게 하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
p25 “ (톨스토이는) 한 결정을 내릴 때 합리적으로는 포착 불가능한 원인들의 숙명적 중요성을 발견한 것이다. “
p38 “ 20세기와 18세기(그들 정신의 세기)의 대면이 작품 전체를 은밀히 관통해야 한다. “
p66 “ 주인 : 우리가 좋은 창작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구나. 너는 사람들이 우리를 잘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느냐? 자크 : 사람들이 누굽니까. 나리?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말입니까? “
p69 “ 주인 : …. 젊은 시인, 자네에게 경고하겠네. 신들도, 인간도, 표지판조차도 시인의 평범함은 용서한 적이 없어! “
p106 “ 자크 : 우리 주인이 우리를 만들어 낸 순간에 이 모든 게 정해진 겁니다. 우리 주인은 나리께서는 겉모습을, 그리고 저는 본질을 갖도록 결정했어요. “
p135 “ 자크 : 나리께 큰 비밀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인류가 태곳적부터 알아 온 계략이죠. 어느 쪽으로 가도 앞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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