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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해파리 만개

by 기시군 2026.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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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만개 #김초엽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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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된 친필 인사말에 '모든 꿈의 조각들을 모아 독자들에게 바친다'라고 쓰여 있다. 짧은 여덟 편의 소설은 그녀가 꾼 꿈이었구나 싶었다. 선의를 가진 자의 꿈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다만 꿈꾸는 자의 관심이 SF의 재미보다 세상의 구조 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독자가 그 꿈에 온전히 빠져들기는 조금 어렵다. 꼼꼼히 느껴보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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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는 사용가치를 말하는 것일 터. 이번 꿈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이다.

바닷속에 있어야 할 해파리들이 도시를 떠다닌다. 시스템이 관리하는 미래 도시는 이 불청객 때문에 골치를 썩인다. 금지된 시설들을 찾아다니는 '나'와 '타래'는 '관찰자'라 불린다. 생각을 담은 끈적이 반죽, 모두가 되길 거부하고 혼자이고 싶은 석상 골렘까지. 쓸모의 입장에서 이들은 모두 무가치하다.

시스템이 버그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이다. 그 설정 자체는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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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이라는 형식의 단점과 장점을 모두 가진 책이다. 짧은 호흡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곳에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반면 SF 장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의 결합과 조합의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형식이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세계를 충분히 펼쳐 보이는 것을 포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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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천선란의 ‘모우어’를 읽고 나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천선란이 인간의 '온도'에 집중한다면, 김초엽은 그 온도를 발생시키는 '구조'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이번 소설집을 읽고 그 생각이 더 단단해졌다. 세상의 아픔을 발생시키는 구조에 집중하다 보니, SF 자체의 재미에는 힘을 약간 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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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보여준 반짝이는 감동과 세밀한 SF 구성에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계속되는 작품들을 읽으며 SF라는 틀을 활용해 소외된 존재, 시스템 바깥의 것들, 구조에 대한 질문들을 계속하는 작가를 읽어왔다. 지향은 옳다. 그러나 그 지향이 유사한 서사나 상상력 속에서 반복될수록 효과는 줄기 마련이다. 자기 복제의 위험은 선한 작가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함정이다. 자신의 가장 강한 무기가 곧 반복의 유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능과 가치있는 생각을 가진 작가 임엔 틀림없다. 아마 머지않아, 데뷰작 이상의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다시 만나리라 기대한다. 그녀를 믿는다. 

✍ 한줄감상 : 비인간 세상에 대한 인간적 접근이라는 김초엽 서사의 미니소설집.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이 책은 마음산책의 ‘짧은 소설집’ 중 한 권이다. 시리즈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한 권을 고르자면 ‘이기호 작가’의 ‘눈감지 마라’다. 추천한다.

p17 “ 네가 세상을 응시하면, 그 순간은 고정될 거야. 툭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모래에게 말해주었다. “ 

p24 “ 네가 지닌 진짜 힘은 고정하는 힘이 아니라 바라보는 힘이야. 응시하는 힘이지. 너는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이 세계가 느린 숨을 쉬게 해. “

p29 “ 해파리 만개 jellyfish Bloom , 봄에 꽃들이 만개하듯 짧은 시간 내에 갑자기 해파리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 “

p43 “ 투명한 비닐 조각들은 길게 늘어뜨린 해파리들이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쯤 되어 보였다. “

p71 “ 어떤 해파리는 영원히 산다. 죽어가는 세포를 미성숙한 상태로 되돌려 다시 살아가고 또다시 살아간다. “

p111 “ 우리는 우주를 돌아다니며, 폐쇄된 거주구와 소생성에서 버려진 인공의식을 구조하는 단체라고. 자의식을 지닌, 최고 감수능력을 지닌 채로 학대당하거나 유기된 인공의식을 자유로운 하드웨어로 옮기는 일을 한다고. “ 

p179 “ 파티클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증식하고 또한 통제하려는 본능을 지닙니다. “

p198 “ 비비는 파티클이지만, 분리된 파티클이에요. 비비는 성격이 나빠요. 전체가 되기를 거부한 일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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