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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ife

나는 골목길 부처다 / 골목길 나의 집

by 기시군 202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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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골목길부처다 #골목길나의집 #이언진 #돌베개 #평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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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기회가 아니면 18세기 조선 시인의 작품을 언제 볼 것인가 하는 생각에 두 권을 사서 읽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평산책방TV에서 진행했던 책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 탁현민 PD가 진행한 북토크를 재미있게 봤다.

영조 때 역관, 이언진. 중인 신분이며 조선왕조의 틀을 부정한 사상가이자 천재 시인. 존재도 몰랐다. 평전을 통해 전후 배경을 이해했고, 시집을 통해 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병자호란 후는 주자학이 교조화된 시대였다. 성경 무오류론자처럼 4서5경이 무오류라 주장하는 송시열 계열의 강성 주자학이 판을 치던 때, 좌파 양명학을 붙든 소수 중 한 명이 이언진이었다.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양지(도덕적 순수함)가 있으니 길거리 사람들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정도면 사문난적 소리를 듣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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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첫머리에 이런 문장이 있다. " 나는 나를 벗하지 남을 벗하지 않는다. p14 " 자기소개로 이만한 문장이 없다. 1763년 통신사를 수행해 일본에 갔을 때, 앉은 자리에서 500여 편의 시를 써 줬고 그 시들이 귀국 전에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조선통신사 역사상 보기 드문 현지 팬사인회이자 완판 기록이다. 저 문장이 허세가 아니다. 😎

카프카처럼, 이언진도 병으로 죽기 얼마 전 자기 글을 모두 태우고 싶어 했다. 카프카는 친구에게 부탁했고(그 친구는 배신했고), 이언진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태웠다. 나를 벗하지 남을 벗하지 않는다던 사람다운 최후다. 그 장면을 목격한 부인이 불길에서 일부를 건졌다.

그렇게 화마에서 구해진 글들이 사후 90여년이 지나 겨우 출판될 수 있었다. 170 연작시 ‘호동거실(서민들이 사는 골목길에 있는 우리 집)’이 실려 있었고, 시집 ‘골목길 나의 집’은 그 시들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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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에서 유시민 작가가 말했다. 아무 정보 없이 이 시집을 읽어도 가슴에 가까이 와 닿는 작품이 있을 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남은 문장이 많았다.

‘ 사람이 사람을 속인다고 다들 말하나 내가 보기엔 내가 나를 속이는 거네. p34 ‘ 자부심은 선명한 자기 객관화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안 할 수는 없다. ‘ 높은 사람 앞에서 배우가 되어 가면을 쓴 채 우는 시늉 하네. p43’ 목구멍이 포도청인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 처는 거미 같고 자식은 누에 같아 나의 온몸 칭칭칭 휘감았어라. p47’ 가장의 부담까지. 현대시라도 이상하지 않다. 

‘ 나의 시는 스산한 데다 메마르고 불교 믿지만 아내 있고 고기도 먹지. p137 ‘ 욕망을 긍정한 개혁파다운 문장이다. ‘ 미칠 땐 기생한테 가고 성스러워질 땐 불전에 참배하네. p161 ‘ 너무 솔직한거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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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넓게 아는 걸 지향하는 내게 이런 독서는 의미가 깊다. 거의 전혀 몰랐던 인물의 역사적, 사상사적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평전을 통해 당시 정치 상황과 주자학을 둘러싼 논쟁, 동아시아 급진파들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한시의 번역이지만 이백 년을 훌쩍 넘은 어떤 문제적 시인의 시를 감상할 기회를 가졌으며, 그의 문장이 지금도 유의미함과 예술적 성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방송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감사한 마음이다. 

✍ 한줄감상 : 식민지 시대에 천재시인 이상이 있었다면, 영조 땐 더 혁명적인 시인 이언진이 있었다. 확인해 보자.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나처럼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시집만 읽을 경우, 후반 후 해설을 읽고 시를 감상하는 방식을 추천한다. 

[평전]

p109 “ 김조순이 쓴 이언진 전기에는 이언진이 이용휴에게 천문학과 기하학을 배웠다는 말이 보인다. “

p116 “ 차별과 억압과 지배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응시하고 육화해 내면서 조선왕조의 틀을 훌쩍 넘어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호동거실’은 조선 시대 미증유의 글쓰기다. “

p128 “ 이언진은 말하자면 고흐 같은 타입의 천재에 가깝다. “ 

p258 “ 이언진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동아시아의 선구적인 인물로 추앙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시집]

p181 “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 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팔십 되면 모두 죽여 버리니 백성도 임금도 똑같은 신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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