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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어느날사랑이여 #최승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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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럽지 않은 행복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깊고 오랜 우울도 있었다. 그 반복이 내 삶이고, 행복을 지향하면서도 우울을 뒷주머니 어디에 달고 다니는 기분이다. 시인 최승자는 잘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 달려 있는 '절망의 시인'이다.
세상 다 망한 것 같은 기분,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아 X발 하고 말 일을 시인은 문학으로 토해낸다. 해설을 맡은 시인 진은영은 이렇게 표현했다. '시집의 절반이 사랑 이야기라면 절반은 죽음 이야기다. p194'
내가 공명한 쪽은 '죽음'이다. 필멸의 진리가 다가왔을 때의 생생함, 그 절망의 달필. 우울할 때는 신나는 노래보다 더 우울한 노래로 감정을 승화시켜야 한다고 했던가. 시인의 시어는 '한두 마디로 고통과 슬픔의 핵심에 도달 p205'하는 매력을 지녔다. 아름답다는 문장은 이쁘다는 문장과 동의어가 아니다. 문학적인 아름다움은 처절하고 모호하지만 가슴 가운데 무언가를 흔드는 '그것'에 기인한다. 난 파괴적이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이 시인의 아름다움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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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으로 오래 병원에 있던 시인이 천주교에 귀의하며 건강을 조금 찾은 것 같다. 등단 후 반세기 가까이 지나 나온 첫 시선집. 함께 시를 고른 후배 시인들의 글까지, 깔끔한 세트로 멋지게 내 앞에 나타났다.
8권의 시집에서 고른 91편. 읽었던 시는 반가웠고, 잊었던 시는 새삼스러웠으며, 놓쳤던 시는 고맙게 읽었다. 후기의 조금 둥그러진 시도 나쁘지 않지만,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다시 읽고 들춰보니 아무래도 나는 초기의 핏빛 가득한 날 것 같은 시어들을 더 좋아하는 게 맞다. 나 아팠을 때, 마음으로 같이 울게 해 준 시들이 더 가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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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 전체를 다음의 문장들로 버무린다. 내 마음에 드는 문장들로, 연속성 없이, 단지 나의 기분에 따라 이어 붙인다. 이상하다고? 알게 뭐냐. 내 마음이다. 😎
"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 매독 같은 가을 /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알코올에 엉기는 니코틴처럼 /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균처럼 /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 애인은 비명횡사한다. 개새끼 잘 죽었다, 너 죽을 줄 내 알았다 / 어느 날 나는 나의 무덤에 닿을 것이다 / 심장과 성기와 항문을 발랑 얼굴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 / 철들어 흘리는 피는 왜 이리 쓰디쓸까 / 내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했으리라는 것 / 생각해 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
✍ 한줄감상 : 아주 멋지게 잘 만들어진 책. 아주 충실하게 잘 짜여진 책. 최승자 시인을 좋아한다면 필구해야 할 책.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곁에 둘 책.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시인의 8권의 시집 중, 나의 베스트는 ‘이 시대의 사랑’과 ‘즐거운 일기’ 두권이다.
p20 “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 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
p24 “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
p46 “ 그리고 고요한 사막의 나라에선 세월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앞에서 쳐들어온다, 야비하게 복병한 죽음을 싣고서. “
p67 “ 나의 뿌리, 죽음으로부터 올라온 / 관능의 수액으로 너를 감싸 적시며 / 나 일어나 / 네게 가르쳐줄게 “
p87 “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
p139 “ 고독이 창처럼 나를 찌르러 올 때 나는 무슨 방패를 집어 들어야 하나, 오 내 방패는 어디 있나. 그냥 온몸 온 정신이 방패인 것을. “
p185 “ 나의 생존 증명서는 시였고 시 이저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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